재기의 활 “개인·단체 올킬” 의기투합

입력 2012-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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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골드를 향해!’ 27일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D-30 공식 미디어데이에서 남자양궁대표팀 오진혁(왼쪽)과 임동현이 앵커(화살을 턱밑까지 당겨 조준하는 자세) 동작을 취하고 있다. 남자양궁은 런던올림픽 개인·단체 동시 석권에 나선다. 태릉|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양궁 오진혁·임동현 함께 꾸는 용꿈

오진혁
자만과 방황…10여년간 슬럼프
3년전 감각 찾고 런던 金 담금질

임동현
종양 수술후 다시찾은 양궁인생
3회 연속 올림픽 금 다부진 각오


정반대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같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다. 오뚝이 인생을 살아온 오진혁(31·현대제철)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임동현(26·청주시청)의 얘기다. 한국남자양궁은 단 한번도 올림픽에서 개인·단체를 동시에 석권한 적이 없다. 2명의 신궁은 신예 김법민(21·배재대)과 함께 런던에서 한국양궁의 새 역사를 쓴다는 각오다.


○잡초와 오뚝이를 닮은 오진혁

오진혁은 충남체고 2학년이던 1998년 세계주니어선수권 개인·단체 2관왕에 오르며, 차세대 주자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0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다. “거만해지고 나타해졌었죠. 2000년 종별선수권에선 정말 꼴찌를 했어요. 순위표를 보면, 제 이름은 항상 뒷장에 있었죠. 앞장으로 넘어오는 데만 몇 년이 걸렸습니다.” 국군체육부대 선수만 아니었다면, 운동을 그만뒀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실업팀에서도 오라는 데가 없었다. 장영술 현 대표팀 총감독의 소개로 현대제철에 입단했지만, 슬럼프 탈출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주말은 술 마시는 날인 줄 알았어요. 그때 만약 운동 관뒀다면, 지금 ‘동네 형’이나 하고 있겠지요.”

그러던 2009년, 10여년간 숨죽였던 손끝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그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 술을 멀리하고, 활시위만 당겼다. 결국 2009울산세계선수권에서 단체 금메달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0대에 운동을 잘 못했으니, 30대에는 국가대표를 오래하고 싶어요. 런던뿐 아니라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까지도 꼭 뛰고 싶습니다.”


○엘리트 임동현, 그에게도 아픔이…

“제가 한참 활을 못 쏠 때였어요. 혜성처럼 한 명이 나타났죠. 어린 친구가 어쩜 저렇게 과감한 결단력이 있을까 싶었어요.” 고교생 임동현에 대한 오진혁의 회상이다.

임동현은 충북체고 3학년이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단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고,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도 단체 금메달을 추가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날리던 어느 날….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직후였다. 양치질 도중 피가 났다. 의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어요. (광대뼈 쪽에) 종양이 있는데 암일 가능성도 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평생 해온 양궁. 이 곳을 떠나면 뭘 해야 하나’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종양은 악성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2011년 2월 수술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코피가 쏟아져서 과다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당시 석 달간을 제대로 훈련도 못하고 선발전에 임했는데, 가까스로 대표팀에 살아남았습니다.” 임동현은 이후 “내가 누군가를 대신해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지만, 그래서 마음가짐은 더 새롭다. “런던에서도 제가 누군가의 기회를 뺏었다는 사실이 미안하지 않도록 경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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