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 김휘 감독 “관객과 감정의 호응을 하고 싶다”

입력 2012-09-03 10: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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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웃사람’ 김휘 감독. 스포츠동아DB

“조마조마합니다. 창작의 작품이면 논쟁에 맞설 수 있지만. 원작이 있으니 논리적인 반박에 대해 해명할 게 거의 없어서 떨리기도 해요.”

첫 번째 연출 영화를 관객 앞에 내놓은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스크린에서 관객에게 전달되는 ‘현재’를 이렇게 느끼고 있다. 조마조마하다”는 감독의 말과 달리, 영화는 흥행 가속 중이다. 2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이웃사람’, 이 영화를 연출한 김휘(43) 감독 이야기다.

탄탄한 줄거리의 시나리오로 충무로에서 인정받아온 김휘 감독은 연출자를 꿈꾸며 영화의 길로 들어선 1993년 이후 꿈을 실현하기까지 꼬박 19년이 걸렸다.

그동안 김 감독은 ‘해운대’ ‘심야의FM’ ‘시체가 돌아왔다’ 등 블록버스터와 스릴러,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흥행 작가로 인정받아 왔다.

첫 번째 연출 영화를 내놓고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어쨌든 각본을 쓰는 것보다 연출이 재미있다”며 웃는 김 감독은 “많이 늦었고 또 많이 돌아온 편”이라며 ‘이웃사람’의 제작 과정과 영화 안에 숨겨 놓은 다양한 수수께끼의 해답을 풀어놓았다.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영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입봉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웃사람’은 3년 전 강풀 작가가 연재했던 동명 웹툰이 원작. 외딴 빌라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 주요 이야기로 살인범도 피해자도, 사건의 해결자도 모두 이웃사람이라는 구성이다.

이미 두터운 팬을 가진 인기 웹툰의 영화화 과정에서 김 감독이 받은 첫 번째 제안은 ‘연출’이 아닌 ‘각본’이었다.

“웹툰 연재 때부터 기다리며 찾아 본 독자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각본 제안을 수락했는데 2년 전에 영화 제작이 잠시 멈췄다. 기다리고 있었고 영화가 다시 진행됐는데 그땐 연출 제의였다. 큰 고민이 없었다. 이미 검증된 이야기이고 비주얼 정리도 된 작품이니까. 무엇보다 이야기가 좋았다.”

김 감독은 여기까지 쉼 없이 말한 뒤에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입봉(연출 데뷔) 욕심에 눈이 멀어서….(웃음) 준비하며 받은 압박이 대단했다. 널리 알려진 원작이니까. 나도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이 영화로 나올 때 만족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렇다면? 원작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실망했던 이유는 원작에 없던 캐릭터가 나오거나 전혀 다른 에피소드가 나올 때. 반대로 원작에서 재밌던 에피소드가 빠졌을 때.”

영화를 본 20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 역시 바로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나뉜다. 원작과 너무 똑같아서 좋고, 싫다는 반응. 김 감독은 “온전히 원작의 캐릭터를 보존하는 대신 주제의 색깔은 달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강풀 작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의 눈으로, 조금 냉소적으로 접근했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자기 관계에서 접근한다. 이웃들이 연대하는 게 아니다. 개별적인 자기 목적을 위해, 특별히 뭘 하지 않는 순간에 나오는 변주와 같다.”

막상 연출을 시작하고 나서는 예상치 못한 벽과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세트 촬영이 모두 끝날 때까지 영화의 중요한 무대인 ‘강산맨션’에 적합한 장소 섭외가 이뤄지지 않았다. “공간의 압박이 상당했다”고 김 감독은 돌이켰다.

순제작비 20억 원. 상업영화 규모로는 현저히 적은 이 금액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감독으로선 녹록치 않았다.

자연히 세트에서 이뤄진 빌라의 입구, 집 현관, 발코니처럼 야외와 연결되는 부분을 촬영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도 겪었다. 안과 밖의 ‘연결’이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완벽한 계산이 필요했다.

어렵게 강산맨션으로 쓰일 만한 부산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김 감독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재개발을 앞둔 이 아파트는 “폐허나 다름이 없었고”, 그래서 “딱 한 동만 리모델링을 해서 촬영을 시작”했다.

“감독의 논의해야 할 대상이 굉장히 크구나. 내 의중이 전달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해보니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논의가 필요했다. 물론 ‘온전한 내 이야기에요’라고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각본보다 연출이 더 재미있다.”(웃음)

○감독이 풀어놓는 비밀의 장면과 배우들
‘이웃사람’은 스릴러이지만 간혹 웃음이 터지는 묘한 장면과 설정도 나온다.

살인범의 존재를 눈치 챈 피자배달부 상윤(도지한)의 채팅 대화명 ‘4885’이 대표적인 설정. 스릴러 대명사 ‘추격자’에서 하정우에게 붙은 별칭도 바로 ‘4885’였다. 김 감독은 “짧은 순간에 캐릭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필요했다”며 “상윤이 타는 배달 오토바이 번호 역시 4885”라고 했다.

강산맨션 경비실에 붙은 마크 역시 얼마 전까지 법원의 상징으로 쓰였던 무궁화 마크를 사용했다. “의도적이었다”고 김 감독은 설명한다. “강산맨션을 우리 사회라고 보면 경비원(천호진)은 관찰자이자 중재자여야 한다. 하지만 경비원은 위협을 감지하고도 도망간다. 상징적으로 그게 사회의 단면이 아닐까.”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를 드러내는 마동석이 연기한 혁모의 상황도 마찬가지. “장애인도 아닌데 장애 주차장을 혼자 쓰는, 맨션 안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이다. 그 안에서는 암적인 존재인데, 조금 더 나쁜 놈(김성균)을 제압한다는 건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권력이나 재벌의 모습도 비춰지고.”

김윤진, 천호진 등 힘 있는 배우들이 참여해 탄탄한 연기력을 펼치는 건 ‘이웃사람’의 최대 강점. 1인 2역을 소화한 김새론에 대해 김 감독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 평가했다.

첫 마디는 “거의 천재”라는 말부터. “아역들이 감독이나 엄마의 연기 지시에 충실히 따르면서 연기를 하는데 새론이는 정확히 자신의 역할을 설계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여선, 수연은 목소리 톤이나 걷는 모습도 다르다. 김윤진이 영화 촬영 전에 ‘새론이는 매소드 연기법을 타고났다’고 했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두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풀어간다.”

○“고전을 해석하는 이야기에 관심”

김휘 감독이 영화 연출을 결심한 건 스물다섯 살 때다. “늦게 시작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예기치 않았던 호기심이 영화계로 그를 이끌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1993년의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 극단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소설만 읽는, 그런 식의 불량학생이었다.(웃음) ‘죄와 벌’이나 윤동주의 시, 톨스토이의 작품을 주로 읽었다. 극단에 있던 선생님 한 분이 영화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렇게 생긴 관심으로 결국 93학번이 됐다.”

영화 프로듀서로도 일했고 그러다가 각본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인정받았고 ‘심야의 FM’은 긴장이 감도는 스릴러로 인기를 얻었다. 연출 데뷔작 ‘이웃사람’은 손익분기점을 일찌감치 넘었고 개봉 2주 만에 200만 관객 돌파까지 이룬다.

김휘 감독은 담담하게 “어쨌든 이 결과가 온전히 정리될 때까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연출하고 싶은 아이템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상업영화에는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웃음이든 눈물이든 감정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다. 개인적으론 고전을 해석한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인문학적으로 깊이 있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치환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구상하는 ‘아이템’에 관해 더 묻는 건 ‘창작자’에 대한 예의는 아닌 법. 질문을 멈추고 대신 엉뚱하게 “결혼은 하셨느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아직”이라며 웃고는 매고 온 배낭을 다시 바로 맸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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