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박찬호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30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2009년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내셔널리그 정상에 올랐을 때 받은 반지를 꺼내들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김종원 기자
양아버지 오말리 구단주 샌디에이고서 새출발
한미야구 가교 역할…한국야구 산업화 돕겠다
1994년 스물 한 살의 청년은 설레는 마음으로 태평양을 건너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17년간 동양인 최다 기록인 124승을 올렸다. 2012년, 불혹을 앞둔 야구영웅은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을 시작하며 다시 태평양을 건넌다.
은퇴를 선언한 박찬호(39)가 야구경영자로 야구인생의 2막을 연다. 박찬호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까지 거치며 30년간 입었던 유니폼을 벗은 채 다시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출발선에 서겠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시골에서 태어난 제가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고, 한국프로야구에서 팬들에게 보답하는 기회도 얻었다. 야구선수 중에 가장 운이 좋은 녀석인 것 같다. 스스로에게 이뤄낸 것이 아니라 버텨낸 것에 대해 ‘수고했다, 장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말로 그라운드를 떠나는 아쉬움을 털어놓은 뒤 “이제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 또 다른 약속과 도전, 꿈을 위해 새로운 설계를 하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운행을 마친 ‘코리안 특급’은 다음달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1994년 자신에게 메이저리그로 올라서는 손을 내밀었던 ‘양아버지’ 피터 오말리 샌디에이고 구단주의 손을 다시 잡는다. 박찬호는 “야구경영과 행정, 구단 운영, 관리,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야구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겠다”며 “오말리의 조언, 그리고 오말리를 통해 여러 가지를 시작할 것 같다. 선수는 아니지만 샌디에이고와 더 많은 인연을 이어갈 것 같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스타 출신들처럼 샌디에이고에서 구단주 특별보좌역 등의 직함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찬호에게는 한국프로야구에서 펼치고 싶은 꿈도 많다. “한국프로야구의 산업화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그는 “스포츠산업이 되어야 선수의 인권, 그리고 선수와 팬의 가치가 모두 올라간다. 올 1년 성적으로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어느 팀과 손잡을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샌디에이고에 적을 두고 한국팀과도 관계를 맺는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박찬호는 “한화를 위해서도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하고 있는 유소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도 계속하겠다. 오늘 수고했다는 말이 가장 고맙다. 언젠가 생을 마감할 때도 오늘처럼 야구인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말로 힘차게 두 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끝으로 자신에게 야구는 “모든 것을 배운 학교와도 같다”고 했다. 박찬호에게 은퇴는 역시 마지막이 아니었다. 더 많은 꿈과 시작이 기다리는 졸업이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