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고에서 훈련 중인 이대호(오릭스)가 승학산에 올라 함께 운동 중인 선수들과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뒷줄 왼쪽 끝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호, 김주찬(KIA), 강경덕(탬파베이), 최천만(롯데 불펜포수), 정훈(롯데), 정영일(전 LA 에인절스). 부산ㅣ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한국야구위원회(KBO) 허구연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은 “한국야구가 위기에 빠졌다. 이제 믿을 건 이대호(31·오릭스)뿐”이라고 말했다. 류현진(26·LA 다저스)에 이어 추신수(31·신시내티)마저도 태극마크를 반납한 뒤였다. 허 위원장은 “빼어난 실력에 진정성이 엿보이는 꾸준한 사회봉사활동, 여기에 무엇보다 태극마크에 대한 강한 열정 등을 고려하면 이 시대 최고의 한국야구선수는 이대호”라고 강조했다. 비단 허 위원장뿐만이 아니다. 올 3월 열리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둔 한국야구계는 온통 이대호만 쳐다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스포츠동아는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야구의 희망’ 이대호가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부산 경남고를 찾아 새해를 맞는 그의 다짐과 각오를 들어봤다.
승학산에 오르고 있는 이대호. 부산ㅣ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WBC 유일한 해외파…경남고서 개인훈련
야구로 혜택 받았으니 야구로 보답
류현진·추신수 태극마크 반납 이해해
새해는 오릭스와 계약 마지막 해
일단 日무대 최고 자리 오르고
일본 다른팀이건 ML이건 선택할 것
한국복귀? 제일 위에 있을 때!
○“대한민국 야구는 강하다. WBC 우승할 수 있다”
류현진에 이어 동갑내기인 추신수가 개인사정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면서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대호는 “이해해줘야 한다”며 친구를 감쌌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것이다. 둘(추신수·류현진) 모두 마음으로라도 대표팀을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선수들의 연이은 이탈로 ‘역대 대표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에 대해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베이징올림픽 때는 정예멤버라서 우승했었나. 아니다. 한국야구는 이제 한두 명 빠진다고 흔들릴 수준이 아니다. 단기전의 특성상, 컨디션 유지만 잘 한다면 충분히 WBC에서 우승할 수 있다.”
○“나라가 나를 불렀다”
‘새해 기운을 미리 느끼자’며 경남고 뒤 승학산에 함께 오르자고 한 이대호는 자신이 태극마크를 단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일찌감치 오릭스에 WBC 대표팀에 합류할 것이란 뜻을 밝혀 허락을 받았다. “2013시즌이 끝나면 나도 오릭스와 2년 계약이 끝난다.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게도 무척 중요한 한 해다. 개인만 생각했다면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착실히 몸을 만드는 게 훨씬 낫다.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싶었다. 야구를 통해 혜택을 받았으니, 나라가 나를 필요로 하면 오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다.
이대호가 승학산 석탑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 있다. 부산ㅣ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WBC 대표팀 직행’, 구단과 싸워서 얻어낸 결과
이대호는 2월 초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에서 열리는 오릭스의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하지 않고, 사이판에서 개인적으로 몸을 만든 뒤 2월 11일 WBC 대표팀 합숙훈련지인 대만으로 직행한다. “구단에서 그러더라. ‘새해 첫 훈련인데 4번타자가 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더구나 새 감독님도 오셨는데, 꼭 왔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엄청 싸웠다. 결코 구단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날 믿으라고 설득했다.”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구단 입장이라도, 4번타자란 놈이 캠프에도 오지 않는다고 하니 기분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대표팀 훈련 일정을 고려하면 스프링캠프에 며칠 간다는 건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태극마크에 대한 부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숙제
“WBC는 단기전이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고, 똑같은 마음이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이대호는 “다른 나라 선수들은 대표팀에 뽑혀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더라. 선수 입장에서 사실 그게 부럽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3월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병역혜택이 없으니, 간절함이 없더라’는 비난이 나올지도 모른다”고도 우려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태극마크를 단 이상, 그런 부담감도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캐치볼을 하던 이대호는 “당장에라도 게임에 뛸 수 있을 것 같다. 컨디션이 좋다”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부산ㅣ박화용 기자 inphoto@d onga.com 트위터 @seven7sola
○한국 복귀? 도망치듯 쫓기며 오고 싶지 않다!
‘오릭스 맨’으로서 새해 목표를 묻자 이대호는 “2012년만 해도, 일본무대 첫해였기 때문에 나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성적 유지가 목표가 아니다. 일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게 새해 개인적인 내 목표”라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를 끝으로 오릭스와 계약이 끝나는 것을 떠올리며 “내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에서 뛸 것이다. 그 팀은 오릭스일 수도 있고, 일본 내 다른 팀일 수도 있다.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인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도 될 수 있고, 한국이 될 수도 있다. 어디가 될진 모르지만, 후회 없이 새 팀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내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슴 속에 품었던 말도 꺼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결코 갈 데 없어, 바닥에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결코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제일 위에 있을 때, 그 때 한국 복귀를 하고 싶다.”
힘들었던 기억 훌훌 털어버리시고
새해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스포츠동아 독자들께 드리는 이대호의 새해 인사
경제가 좋지 않아 다들 걱정이시던데, 새해에는 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한 해 힘 드신 게 있으셨다면 훌훌 털어버리시고, 새해에는 모든 분들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야구선수 이대호로서, 새해에는 좀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 겨울 유난히 추운 듯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산|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