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정규리그 1위 ‘명품 조연’ 고희진

입력 2013-02-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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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진. 스포츠동아DB

“이 나이에 뛰는 게 기쁘지 아니한가”
웃음·오버액션으로 팀 분위기 UP
후배들 독려하고 궂은 일도 도맡아


2012∼2013시즌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삼성화재의 타임아웃 때를 보면 다른 팀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신치용 감독의 작전지시 이후 꼭 선수 한 명이 말을 덧붙인다. 많은 말도 아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장인 고희진(33·사진)이다. 추가하는 말은 감독의 지시와는 다른 내용이다.

5라운드에서 현대캐피탈과 선두경쟁이 한창 일 때는 “현대 선수들이 웃고 있다. 정신 차리자”였다. 베테랑 석진욱이 부상으로 빠졌을 때는 “진욱이 형 없다고 배구 안 할거야”며 다그쳤다. 경기 초반 항상 부진한 박철우에게는 “희생해라. 블로킹이랑 수비 잘하면 된다. 팀이 이기면 된다”고 했다. 그의 한 마디는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머리에 쉽게 들어온다.

삼성화재가 다른 팀보다 빼어난 것은 조직력이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간다. 선수 각자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알고 묵묵히 해낸다. 삼성화재는 팀을 위해 빛나는 선수 따로 있고, 뒤에서 설거지를 하는 선수가 따로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대중의 스타가 돼야 몸값이 올라가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조연이 되고 싶은 선수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팀을 위해서는 누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고희진은 그 역할을 즐기면서 한다.

코트에 나서면 항상 웃는다. “이 나이에 코트에 서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웃는다”고 했다. 몸짓이 크다. 후배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 많다. 25일 현재 시즌동안 올린 점수는 137점. 25경기에서 뽑은 것이다. 경기당 평균 5.48점. 레오나 박철우에 비할 바는 아니자만 팀에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나온 알토란같은 점수였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신치용 감독이 내심 걱정했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베테랑의 체력이 얼마나 버텨줄지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올해 우승 못하면 은퇴”라고 했다. 그렇지만 23일 KEPCO전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뒤 신 감독은 시즌의 수훈선수로 고희진을 꼽았다. 숫자나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은 역할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고희진은 정규리그 우승 뒤 인터뷰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태도였다. “(챔피언결정전)우승을 앞두고 거치는 과정일 뿐 지금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주장이 있으면 감독은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 삼성화재가 무서운 것은 솔선수범의 베테랑이 중심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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