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TALK!베이스볼] ‘설사 투혼’ 백정현, 정신력 살아있네

입력 2013-03-1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13년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팬들의 뜨거운 함성 속에 시작됐습니다.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참패가 프로야구 흥행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됐지만, 초반 분위기만 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네요.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도 이겨냈던 한국야구다. WBC 때문에 너무 위축될 필요 없다. 중요한 건 긴장을 풀지 말고,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모 구단 단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3월 새 봄과 함께 야구가 돌아온 것처럼, 야구계의 뒷이야기들을 전하는 ‘톡톡(Talk Talk) 베이스볼’도 새롭게 기지개를 켭니다. 먼저 짙은 아쉬움을 남긴 WBC의 ‘못 다한 이야기’ 보따리부터 풀어보겠습니다.


구본능 총재, 물잔 6잔 떠놓고 ‘비나이다’

○…4일 대만 타이중 인터콘티넨탈구장은 이상저온으로 쌀쌀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 총재는 목도리로 찬바람을 마다않고 일반 관중석에서 호주전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떡하나. 6점차가 쉬운 게 아닌데. 숙소 돌아가서 생수 6잔 떠놓고 알몸으로 치성을 드려야겠다”고요. 다음날 대만전에서 6점차 이상으로 이겨야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던 겁니다. ‘진짜로 하실 거냐’는 KBO 직원의 말에 “당신도 꼭 하라”고 명령(?)까지 내리더군요. 비록 구 총재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은 탈락의 비운을 맛봤지만, 커미셔너에 앞서 열렬한 야구팬으로서 구 총재의 야구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SUN “용규야, 아프면 대주자라도 뛰어라!”

○…2R 진출에 실패했지만 대표팀 1번타자 이용규(KIA)는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매특허인 ‘커트신공’으로 상대 투수를 끈질기게 괴롭혔고, 필요할 때마다 출루하며 찬스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용규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대표팀 합류 전부터 어깨 통증으로 진통제주사를 맞았고, 대회에 임박해서야 캐치볼을 시작했을 정도니까요. 한때 교체 가능성까지 나돌았는데, 이를 ‘단칼에 정리’한 것은 다름 아닌 소속팀 KIA 선동열 감독이었답니다. 선 감독은 대표팀에 차출되는 이용규에게 “중간에 돌아올 생각 말고 대타, 그것도 안 되면 대주자라도 뛰어라”라고 했답니다. 다행히 대회에 들어가자 이용규의 몸 상태는 많이 호전됐고, 이용규 덕분에 많은 팬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죠. 이용규의 투혼 뒤에는 선 감독의 독한 주문이 있었던 거죠.


백정현 ‘폭풍설사’ 전화위복…힘 빠쪄서 호투?

○…이제 시범경기 이야기로 들어가볼까요? 삼성 좌완 백정현은 9일 LG와의 시범경기 개막전에 당당히 선발투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2군에선 종종 선발로 나서기도 했지만, 1군 공식경기에서 선발은 2007년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시범경기 개막전 선발투수였어요. 그만큼 팀에서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겠죠. 올해는 중간계투로 시작하겠지만, 장차 선발로 키울 재목이라는 게 삼성 코칭스태프의 판단입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선발등판을 앞두고 배탈이 나고 말았어요. “전날 밀면을 먹었는데, 맛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무래도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스스로 진단하더군요. 결국 경기 전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진을 뺐어요. 이미 양 팀 선발 라인업도 교환된 상황에서 “설사 때문에 못 던지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런데 ‘폭풍설사’가 전화위복이 된 걸까요? 힘이 빠져서인지, 힘을 빼고 던져서인지 4이닝을 1안타 1실점(비자책점)으로 훌륭하게 막아냈습니다. 볼넷 3개가 흠이었지만, 힘에만 의존하던 투구에서 벗어나 완급조절도 잘 이뤄졌고요. 백정현은 “3회부터는 힘이 없었다. ‘이건 정신력이다’고 생각하면서 던졌다”고 고백해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내일 좀 져주이소’하던 롯데팬과 같은편 된 김시진

○…2년 전의 일입니다. 2011년 5월 10일. 당시 넥센 사령탑이던 롯데 김시진 감독은 사직 롯데전을 마친 뒤, 숙소 근처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3-4로 아깝게 패한 터라, 김 감독의 마음은 편치 않았죠. 그런데 옆 테이블의 부산 팬들이 김 감독을 알아보고, 쓰라린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감독님, 다른 팀에는 이겨도 되니까 내일도 좀 져주이소.” 사람 좋은 김 감독은 태연하게 받아쳤습니다. “계속 지면, 나 책임질랍니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팬은 “하모. 책임지지요”라고 답하더군요. 세월은 돌고 돌아 정말로 김 감독은 롯데 사령탑이 됐습니다. 10일 시범경기를 앞둔 김 감독에게 그 때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사직 2연전에는 총 2만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찼습니다. 응원단 없이도 상대의 견제구에는 단결된 “마!”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구단 프런트는 “왜 선수들을 팔아먹었느냐?”는 전화도 받습니다. 이대호(오릭스), 김주찬(KIA), 홍성흔(두산), …. 엄밀히 말해, FA(프리에이전트) 선수들이라 구단이 팔아먹은 것은 아닌데 말이죠. ‘독이 든 성배’라는 롯데 수장 자리에 앉은 김 감독은 훗날 부산 팬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요. 2년 전 “제발 져달라. 책임지겠다”고 읍소하던 그 팬은 일단 김 감독에게 뜨거운 성원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츠1부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