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피칭 X파일] 투수가 마운드를 두려워할 때 ‘빅이닝’은 찾아온다

입력 2013-05-2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투수가 빅이닝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선 심판과 실책 등 외부 변수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타자와의 싸움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롯데 투수 김사율. 스포츠동아DB

■ ‘빅이닝’을 막아라!

판정·실책 등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면 끝장
실점 않으려 무리? 되레 흐름 잃고 대량실점

빅이닝 최소 허용 삼성, 탄탄한 마운드 방증
한화는 30차례로 최다…4사구부터 줄여야

롯데, 빅이닝 나오면 게임 오버…승률 1할대


투수들에게 ‘빅이닝’은 반드시 막아야 할 과제다. 빅이닝은 ‘한 이닝에 3실점 이상 하는 경우’를 말한다. 빅이닝을 허용하는 팀은 대부분 패한다. 투수가 한 이닝에 대량실점을 하면 상대팀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고, 팀 동료들은 힘이 빠진다. 그래서 투수들은 빅이닝을 방지할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계획을 세워 피칭하면, 최소실점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빅이닝은 투수가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야수 실책, 볼넷,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이유일 수도 있다. 좋은 투수는 위기를 최소실점으로 막는 투수다. 실점하지 않으려고 무리한 투구를 하고 경기 흐름에 역행할 때, 빅이닝이 발생한다. 위기에선 투수 자신도 모르게 템포가 빨라진다. 빨리 마운드를 벗어나고픈 생각에 몸도, 마음도 급해진다. 그러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서두르는 것은 빅이닝의 시작일 뿐이다.


○SK 10점차 기적 같은 역전승!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점수차 역전극이 펼쳐진 5월 8일 두산-SK의 문학경기. SK는 1회초 두산에 무려 9점을 내줬다. 선발 여건욱이 6타자를 상대로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6실점했다. 선두타자 민병헌에게 2루타를 맞은 뒤 2번 최주환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흔들렸다. 3번 김현수, 4번 홍성흔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최준석에게는 3점홈런까지 허용했다. 뒤이어 등판한 최영필마저 3실점하며 SK는 1회에만 무려 9점을 내줬다. 9실점 속에는 볼넷 2개와 실책 2개가 포함됐다.

그러나 4회까지 11-1로 앞서던 두산은 믿기 힘든 역전패를 당했다. 6회 4점, 8회 5점 등 2차례의 빅이닝을 허용하며 결국 12-13으로 경기를 내줬다. 두산 선발 이정호가 6회 연속 5타자를 출루시키는 과정에서 한 템포 늦은 투수교체가 아쉬웠다. 이미 한계투구수를 넘어서고 있었다. 12-7로 앞선 8회말에는 변진수가 흔들렸다. 올라오자마자 연속안타와 볼넷으로 1사 만루 위기를 맞았다. 구위가 위력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김성현에게 3타점 2루타를 내줬다. 분위기가 SK로 넘어가고 있었다. 두산은 빅이닝의 흐름을 2차례나 알아채지 못했다.


○나이트는 심판과 싸우고 있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고민하고 있었다. 5월 16일 목동 한화전이었다. 넥센 선발 나이트는 5회까지 볼넷 4개를 내줬다. 상대 타자와 싸우지 못하고 주심의 판정에 흔들렸다. 6회에도 볼넷을 2개나 내주며 1사 1·2루의 위기에 몰렸다.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감독은 바꾸고 싶어 한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투수코치)” “6회까지 책임지겠다.(나이트)” 그러나 다시 볼넷이 나왔다. 1사 만루. 그리고 이대수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0-3으로 점수차가 벌어졌고, 실책까지 겹쳐 0-5가 됐다. 6-5로 역전승을 거둔 뒤 염 감독은 “감독이 망친 경기를 선수들이 이겼다”고 밝혔다. 이날 나이트는 올 시즌 가장 많은 7개의 볼넷을 내줬다. 염 감독은 “나이트는 심판과 싸우고 있었다. 에이스에 대한 예우로 지켜봤지만, 좀더 빨리 바꿨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삼성·LG, 빅이닝 허용 가장 적다!

21일까지 팀 방어율 1·4위 삼성과 LG가 빅이닝 허용이 가장 적었다. 스포츠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삼성과 LG 모두 15차례뿐이다. 특히 삼성은 5점 이상을 허용한 이닝이 한 차례도 없다. 마운드가 가장 안정감이 있다는 결론이다. LG는 6∼8회에 빅이닝이 10차례나 몰려있다. 경기 전반보다는 후반 싸움에서 많이 밀렸다. 반면 5회까지는 빅이닝이 5차례로 가장 적다. 선발진은 비교적 잘 싸워주고 있다는 결론이다. 빅이닝을 허용한 경기의 승률은 매우 낮다. 삼성은 4승8패, LG는 3승11패다.


○한화, 빅이닝 허용 30차례로 최다!

빅이닝을 가장 많이 허용한 팀은 한화다. 30차례나 대량실점을 했다. 빅이닝을 허용한 경기의 승패는 3승1무17패로 승률 0.150이다. 한화의 팀 방어율과 4사구는 9개 구단 중 가장 많다. 빅이닝을 줄이는 방법은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과감하게 던지고, 4사구를 줄이는 것밖에 없다. 1군에서 던지는 기회를 좀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두산은 타격전을 좋아한다!

팀 타율 1위 두산은 빅이닝을 주고받는다. 한화에 이어 2번째로 많은 26차례의 빅이닝을 허용했다. 상대에게 빅이닝을 안겨준 것은 가장 많은 31차례다. 한꺼번에 주고 한꺼번에 뽑아내면서 빅이닝 경기의 승패가 8승11패로 가장 좋다. 초반 1∼3회에 빅이닝 허용이 11차례로 가장 많다. 약해진 선발진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노경은과 올슨의 호투가 절실하다.


○SK·롯데, 빅이닝 게임에서 가장 약하다!

빅이닝을 허용한 경기에서 가장 승률이 낮은 팀은 롯데와 SK다. 두산에 10점차 역전승을 기록한 SK지만, 빅이닝 경기의 성적은 2승12패(승률 0.143)다. 특히 7회와 8회에 빅이닝이 7차례나 있다. 불펜진이 약하다는 결론이다. 박희수가 합류했지만, 올해 SK의 최대 과제는 불펜임을 말해준다. 분위기가 꺾이면 역전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롯데는 2승13패, 승률 0.133이다. 빅이닝을 허용한 게임에서 승률이 가장 낮다. 1회에 빅이닝을 허용한 경기도 4차례로 가장 많다. 가장 약한 타선이 된 롯데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일순간에 3점 이상을 실점하는 이닝이 많아진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15일 목동구장에서 넥센은 한화에 19-1로 대승을 거뒀다. 목동|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넥센, 선발진이 강하다!

넥센의 빅이닝 허용은 18차례로 삼성, LG 다음으로 적다. 5회까지는 6차례뿐이다. 나이트-밴 헤켄- 강윤구-김병현-김영민으로 짜여진 선발진이 제몫을 다하고 있다. 타선이 강해 빅이닝을 허용한 경기에서 5승9패로 선방했다. 빅이닝 허용이 경기 후반에 대거 몰려있다. 가장 많은 홀드와 세이브를 기록하고 있지만, 패하는 경기에선 대량실점이 많았다.


○NC·KIA, 불펜이 문제다!

막내 NC는 9회에 빅이닝을 5차례나 허용했고, KIA는 8회에 5차례 빅이닝을 내줬다. 경기 후반에 집중된 빅이닝 허용은 두 팀의 불펜이 약하다는 증거다. NC는 이민호, 이성민, 노성호, 최금강이 선전하고 있지만 역시 경험이 모자란다. 시즌 초반 기대가 컸던 고창성과 이승호의 활약이 필요하다. 불펜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했던 KIA는 송은범과 신승현의 합류가 천군만마다. 불펜이 약한 팀에서 강한 불펜으로 변신했다. 8회 5차례나 집중된 KIA의 빅이닝 허용은 이제 쉽게 보기 힘들지 모른다.

빅이닝을 막기 위해 처음 해야 할 일은 상황파악이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들이마시고, 타자에게 집중해야 한다. 경기장 분위기에 압도당한 자신을 막지 못하면 빅이닝도 막을 수 없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