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컨트롤의 달인 피비, 레드삭스 야망의 마지막 퍼즐

입력 2013-08-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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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 히든카드 제이크 피비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 불구 팀 방어율 15위
PS 대비 피비 영입…AL ‘최강 5선발’ 완성


2007년 트리플크라운·사이영상 수상 영예

2008년 팔꿈치부상 후 부진…지난해 부활
시각장애 수준 시력 불구 제구력은 정상급


2013시즌 개막에 앞서 보스턴 레드삭스는 전문가들로부터 ‘죽음의 디비전’이라 불리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꼴찌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듯 레드삭스는 6일(한국시간) 현재 68승46패로 아메리칸리그 최고 승률(0.596)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레드삭스의 최대 강점은 폭발적 타선이다. 114경기에서 568득점(경기당 평균 4.98득점)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투수진은 3.78의 방어율로 전체 15위에 그치고 있다.

페넌트레이스에선 다소 빈약한 투수력을 막강 타선으로 너끈히 메울 수 있지만,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포스트시즌에선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확실하게 경기를 잡아줄 에이스급 투수가 필요하다. 이에 레드삭스는 트레이드 마감일을 기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부터 우완투수 제이크 피비(32)를 영입했다. 물론 주전 3루수로 3할대 타율을 기록 중이던 최고 유망주 호세 이글레시아스(23)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과연 피비는 6년 만에 정상 재등극을 노리는 레드삭스의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을까.

4일 펜웨이파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피비가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 선발은 12승이나 거둔 좌안 패트릭 코빈.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던 4회초 다이아몬드백스가 먼저 점수를 뽑았다. 3번 폴 골드슈미트가 피비로부터 중월솔로홈런을 빼앗았다. 레드삭스는 5회말 셰인 빅토리노의 좌월솔로홈런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7회말 제이코비 엘스베리의 적시타와 빅토리노의 희생플라이를 묶어 3-1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날 승부의 분수령은 8회였다. 피비가 안타 2개와 몸에 맞는 볼로 무사만루 위기에 몰리자, 레드삭스 존 파렐 감독은 일본인 투수 다자와 주니치를 등판시켰다. 다자와가 애런 힐에게 적시타를 맞아 1점차로 쫓겼지만, 2루주자 윌 니베스가 홈으로 쇄도하다 아웃당했다. 한숨을 돌린 다자와는 골드슈미트를 헛스윙 삼진으로 요리한 뒤 에릭 차베스를 좌익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 피비의 승리투수 요건을 유지시켰다. 레드삭스는 8회말 곧바로 재로드 살탈라마키아의 쐐기 우월2점홈런으로 응수해 다이아몬드백스를 5-2로 제압했다. 7이닝 4안타 7탈삼진 2실점으로 레드삭스 데뷔전을 마친 피비에 대해 파렐 감독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정말 멋진 데뷔전이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피비의 가세로 레드삭스는 존 레스터(10승6패·방어율 4.52), 펠릭스 듀브런트(8승5패·방어율 3.56), 존 래키(7승9패·방어율 3.21), 라이언 뎀스터(6승8패·방어율 4.54)로 이어지는 안정적 선발진을 꾸리게 됐다. 여기에 시즌 초반 9승 무패로 눈부신 호투를 거듭했던 클레이 벅홀츠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오면 어느 팀과 견줘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마운드를 구축하게 된다.

앨라바마주 출신의 피비는 고교 졸업 후 대학 대신 프로를 택했다. 199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 472순위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된 뒤 3년 반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02년 6월 23일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메이저리그 2년차인 2003년 12승(11패)을 거두며 파드리스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데 이어 2004년 15승(6패)을 따내며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04시즌 166.1이닝 동안 173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방어율 2.27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등극했다.

2005년 초 4년간 1450만달러에 장기계약을 맺은 피비는 생애 처음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216개의 탈삼진으로 내셔널리그 1위를 차지했다. 피비의 활약을 앞세운 파드리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정상에 올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한 피비는 무려 8실점이나 하며 고개를 숙였다. 1차전이 끝난 직후 파드리스 구단은 피비가 남은 시리즈에 등판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는 파드리스가 지구 우승을 확정지었을 때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다 그만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열린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피비는 미국대표팀의 주장을 맡았고, 에이스로 활약했다.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3이닝 무실점으로 2-0 승리에 앞장섰고, 일본전에선 5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지만 미국이 4-3으로 역전승해 패전을 면했다. 2007년은 피비를 위한 시즌이었다. 생애 2번째 올스타로 뽑혔고, 투수로선 최고 영예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다승(19), 탈삼진(240), 방어율(2.54)에서 모두 내셔널리그 1위를 거머쥐었다. 그 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도 만장일치로 피비의 차지가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피비에게도 어김없이 시련이 찾아왔다. 팔꿈치 부상을 당한 2008년 10승(11패)에 그친 가운데 우승 후보들의 구애 공세가 그에게로 이어졌다. 온갖 트레이드 루머를 뒤로 하고 파드리스에 잔류한 그는 2009시즌 개막에 앞서서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트레이드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6월 발목 부상을 입어 부상자 명단에 등재돼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던 끝에 마음을 바꿔 트레이드 마감일에 화이트삭스로의 이적에 동의했다. 8년 반 동안 92승에 이르는 호성적을 올렸던 내셔널리그와는 달리 화이트삭스에서의 생활은 악몽이었다. 2년 반 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고작 39경기 등판에 그치며 17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방어율도 4점대 중후반으로 올라갔다. 피비는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다.

2012년 피비는 4년 만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팀 전력이 약해 11승(12패)밖에 못 거뒀지만, 생애 2번째로 많은 219이닝을 소화했다. 올 시즌에도 방어율은 4점대로 좋지 않았지만, 전반기에 8승(4패)을 따내 화이트삭스 팀 내 최다승 투수였다.

최근 레드삭스로 이적하면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 피비는 2010년 입은 어깨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시력은 시각장애인 수준으로, 렌즈 없이는 아예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그 때문에 2006년부터 그의 공을 받은 포수들은 손가락에 흰색 테이핑을 해 피비가 사인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렌즈를 끼고도 시력은 최저지만, 피비의 제구력은 어떤 투수보다 뛰어나다. 메이저리그 통산 1887.1이닝 동안 삼진을 1831개 잡는 동안 볼넷은 567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앞은 잘 볼 수 없지만 승리에 대한 집념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한 피비가 레드삭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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