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난히 많은 사극 영화가 관객을 찾아온다. 장르도 판타지, 액션 등 다채롭다. 코미디와 판타지를 섞은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위)과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강동원 주연 ‘군도:민란의 시대’.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
제작 중이거나 개봉 앞둔 사극 7편
‘광해’‘관상’ 등 잇단 흥행 성공 계기
시장 급성장…블록버스터 기반 확충
현실 비판 목소리 내기도 안성맞춤
스크린이 ‘미지의 시간’에 매료됐다.
짧게는 200년, 길게는 700여년 전 시대를 배경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과 시간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내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촬영 중이거나 이미 개봉을 준비 중인 사극은 7편에 이른다. 배우 최민식과 이병헌, 하정우, 강동원, 전도연, 손예진 등 톱스타급 배우들의 선택도 사극이다. 왜, 지금, 사극일까.
● 소재도, 장르도…창작 유연성↑
스크린에서 사극이 날개를 달기 시작한 건 2011년 747만 관객을 모은 ‘최종병기 활’부터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광해·1232만), 2013년 ‘관상’(913만)이 잇따라 흥행하며 사극을 향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개봉하는 사극의 소재와 장르는 한층 다양해졌다. 손예진·김남길 주연의 ‘해적:바다로 간 산적’(해적)은 코미디와 판타지가 섞인 복합장르. 조선 초기 국새를 삼킨 귀신고래를 찾아 나선 해적과 산적의 대결이다. 이병헌·전도연의 ‘협녀:칼의 기억’은 고려 무신시대 무림에서 활약한 고수들의 이야기. 한국영화에선 드문 무협 장르로 기대를 모은다.
사극의 최대 강점은 이처럼 다양한 소재 표현이 가능한 ‘창작의 유연성’에 있다. ‘해적’, ‘협녀’에 더해 현빈 주연의 ‘역린’까지 세 편의 사극을 연달아 내놓는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배경만 과거일 뿐”이라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르가 사극”이라고 말했다.
‘사극을 사랑한 톱스타.’ 최민식, 이병헌, 하정우, 현빈 등 톱스타들이 줄줄이 과거로 돌아간다. 최민식 주연 ‘명랑:회오리 바다’(위)와 현빈의 영화 ‘역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
● ‘2억 관객 시대’…시장 반영한 블록버스터 등장
사극의 제작비는 한국영화 편당 평균 제작비를 훨씬 웃돈다. 시대를 재현할 세트와 의상에 현대극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여름 개봉하는 최민식·류승룡의 ‘명량:회오리 바다’, 하정우·강동원의 ‘군도:민란의 시대’(군도)는 100억원을 훌쩍 넘긴다. 400만 관객을 모아야 본전을 뽑는 블록버스터들이다.
대형 사극이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은 급성장한 한국영화 시장과 맞물린다는 분석이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2억 관객 시대에 맞는 블록버스터가 필요한 시점에서 특정 계층을 넘어 넓은 연령층의 관객을 아우르는 데 사극만 한 장르가 없다”며 “옛것을 재현하는 다양한 볼거리로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갖춘다”고 짚었다.
한편으론 ‘입증된 수익성’에 따른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앞서 ‘최종병기 활’과 ‘광해’, ‘관상’의 성공이 대형 사극 제작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 블록버스터 사극은 이미 수익성이 증명된 안정적인 투자 모델”이라고 말했다.
● 사회 분위기 우회적으로 담아내는 효과
사극은 현대극에 비해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맞춤한 그릇이기도 하다. 실제로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왕의 이야기라는 컨셉트를 내건 ‘광해’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반추하게 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현실 비판과 관련한 직접적인 논란에는 휩싸이지 않았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시대를 그린 덕분에 영화와 현실을 겹쳐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올해 개봉하는 사극 역시 이런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탐관오리를 향한 민초들의 반란을 그린 ‘군도’, 밑바닥 인생들과 권력의 대립을 담는 ‘해적’ 등은 현실 비판적 목소리를 담고 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현재 제작 중인 대부분이 사극이 2∼3년 전 기획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민감한 이야기를 사극이란 안전장치 안에서 전하려는 시도가 많다”고 밝혔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