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란 “행여 다칠까 설거지도 말리시는 시어머니”

입력 2014-0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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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차를 맞은 도로공사 리베로 김해란이 선수와 주부, 며느리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로공사의 PO 티켓과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쏟는다. 사진은 웨딩촬영 당시 모습.

■ 시댁 김해란의 특별한 설날

프로배구 도로공사의 리베로 김해란(30)은 24일 경남 통영의 시댁을 찾았다. 23일 흥국생명과의 인천 원정에서 승리해 팀이 3위로 올라선 뒤 서남원 감독이 휴가를 줬다. 경기 스케줄에 여유가 있자 미리 설 인사를 다녀오라는 배려였다. 지난해 6월15일 결혼식을 올린 새댁 김해란은 자주 시댁을 찾는다. 첫 추석 때는 국가대표로 해외원정 중이었다. 이번에는 타이밍이 좋아 설을 앞두고 미리 인사를 드렸다. 시댁 어른들은 운동선수 며느리를 어여삐 여긴다. 직업 운동선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어른들의 배려가 고맙다.


작년 결혼 후 시댁서 첫 설 맞이
시부모님 “다치지말고 운동만…”
축구선수 남편도 합숙…늘 연애중
아이는 2∼3년 뒤 가질 거예요



● 오랜 동안 집을 떠나 살았다

12살에 배구선수가 된 이후 집은 남들과 같은 집이 아니었다. 1년 내내 합숙이었다. 1∼2차례 휴가 때 집을 찾는 것이 전부였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는 더욱 명절을 잊고 살았다. 숙소 아주머니들이 차려준 명절 음식을 먹으며 동료들과 시간을 보낸 날이 대부분이었다.

도로공사는 설날(31일) 수원에서 현대건설과 경기를 한다. 시댁에 다녀오자마자 주부에서 선수로 되돌아갔다. 다른 며느리처럼 명절 때 시댁에서 음식을 차리고 일손을 거드는 일은 생각할 여유도 없다. 시댁에 가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 부엌에서 요리도 설거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옆에 서서 있는다”고 했다. 배구선수 며느리를 얻은 뒤 시댁 어른들은 “다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해라”고 신신당부 한다. 가끔 보약도 보내준다.


● 대한민국에서 주부 배구선수로 산다는 것은

V리그의 주부 선수는 6명. GS칼텍스 정대영 이숙자, IBK기업은행 남지연, 도로공사 장소연, 흥국생명 윤혜숙 등이 있다. 주부선수들도 합숙에 예외는 없다. 대부분이 남편과 떨어져 지낸다. 한국철도공사 축구선수인 남편(조성원)도 지금 제주도에서 동계훈련중이다. “가끔씩 만나다보니 결혼을 해도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여자 선수는 사흘 이상 훈련하지 않으면 근육이 풀어진다. 일반인과는 다른 몸을 가져야 하는 선수들은 결혼과 출산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지난 해 6월8일 결혼식을 올린 남지연이 신혼여행을 앞두고 주저하자 걱정하지 말라며 보내줬다. 대신 신랑에게 부탁을 했다. “신혼여행 기간에도 체력훈련을 시켜 달라”고 했다.

주부 김해란은 2세도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형님이 소식이 없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 2∼3년 뒤에는 가질 생각”이라고 했다. 그 때가 되면 배구를 계속할 것인지 그만둬야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팀이 허락하고 몸만 된다면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운동선수 부부가 사는 법

7년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엄한 코치다. “힘들다고 징징대면 나약해졌다고 가끔 혼을 낸다. 누구도 (나를) 혼내지 않는 것 같아서 자만하지 말라고 더 혼낸다고 남편이 말했다.” 가끔은 섭섭하지만 남편의 그런 배려가 고맙다.

운동선수라는 공통점은 큰 도움이 된다. 신혼여행 때도 같이 체력훈련을 했다. 신혼집은 판교 숙소와 10분 거리다. 남편의 훈련장과도 가깝다. 남편은 출퇴근을 하는데 아내는 합숙에 들어간다. 이때 집안일은 고스란히 남편의 몫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한다.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요리솜씨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가끔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 요리도 해줬다. 남편도 시간이 나면 아내의 훈련장을 찾는다. 좋아하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사가지고 오는 남편을 보며 새삼 결혼에 감사한다.


● 배구선수라는 직업, 10년 올스타 반지

배구선수 출신의 아버지와 육상선수 출신의 어머니 덕분에 체력은 타고 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키가 지금의 키(168cm)다. 키가 커 시작한 배구가 김해란과 유난히 잘 맞았다.

12년의 프로선수 생활로 돈도 벌었다. 부모님께 집도 사드렸다. 부부만의 집도 대전에 마련했다. 집을 선물하던 날 어머니는 "너 없으면 어쩔 뻔 했냐“고 말씀했다. 외동딸은 유난히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아프지 않고 운동을 한다. 매일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다른 리베로들과는 다르다. 리베로는 항상 희생하고 배려하는 포지션이다. 연애할 때도 결혼 뒤에도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리베로 특유의 성격이 크게 도움을 줬다.

김해란은 최근 V리그 10년 올스타에 뽑혔다. “구기란 언니, 남지연 선배 등이 있어서 생각도 못했는데 영광이었고 정말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감사의 마음으로 팬에게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선물하려고 한다. 소속팀 도로공사에도 꼭 봄 배구 티켓을 안기고 싶다.

김해란이 설 연휴를 잊고 코트에서 더욱 땀을 흘리는 이유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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