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이 부른 롯데-두산전 희대의 해프닝 전말

입력 2014-04-1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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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김시진 감독-두산 송일수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야구에서 아웃카운트를 착각한 탓에 무심코 공수교대를 할 뻔한 희대의 해프닝이 터졌다. 이 해프닝이 결과적으로 승부의 결정타로 작용해 뒷맛이 더욱 씁쓸하게 됐다. 18일 잠실 롯데-두산전에서 나온, 역사에 남을 초유의 사건의 전말을 정리한다.


● 겉으로 드러난 상황

2회초 2-1로 역전에 성공한 롯데는 1사 만루의 추가득점 찬스를 잡았다. 롯데 2번타자 정훈은 여기서 3루 땅볼을 쳤다. 3루수 허경민이 홈에 송구했고, 포수 양의지는 더블플레이를 위해 1루로 던졌다. 이때 1루수의 발이 베이스에 떨어져 타자주자는 1루에서 세이프로 선언됐다. 전광판에 두 번째 아웃카운트가 들어왔다. 전광판대로라면 3루주자가 홈에서 포스아웃되고, 2사만루에서 플레이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이어 두산 선발투수 볼스테드는 롯데 3번타자 손아섭을 투수땅볼로 유도했다. 볼스테드는 1루에 공을 던지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두산 선수들 모두 1사 만루를 막아내 기세가 올라있었다. 롯데 선수들 일부도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런데 공수 교대 직전에 그라운드가 술렁술렁했다.

심판원들이 모였고, 기록원까지 가세해 무언가 한참 얘기를 나눴다. 롯데 벤치는 이미 그라운드에 나가 있던 선수들을 들어오라고 했다. 롯데 벤치와 한참이나 얘기를 나눈 심판진은 두산 벤치로 갔다. 무언가 ‘통보’를 전해들은 두산 벤치는 펄쩍 뛰었다. 두산 김태룡 단장까지도 나와서 항의했다.

7시 10분에 중단된 경기는 22분이 흐른 7시 32분에서야 재개됐다. 놀랍게도 두산 선수들이 다시 수비를 하러 그라운드로 나왔다. 전광판은 4-1로 둔갑됐다. 아웃카운트를 가리키는 빨간 불빛도 2개가 들어와 있었다. 롯데는 결국 2아웃 주자 2·3루 상황에서 공격을 재개했다. 도대체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무엇이 문제였나?

문제의 씨앗은 1사 만루에서 3루수 허경민의 송구를 받은 두산 포수 양의지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찍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더블플레이를 위해 1루 송구에 신경을 쏟은 나머지 오른발이 홈 플레이트를 제대로 터치하지 못한 것이다. 3루주자 문규현이 홈에 슬라이딩을 하자 이기중 구심의 팔은 활짝 펼쳐진 것이 명백했다. 심판이 제대로 본 것이다.

타자주자도 1루에서 살았기 때문에 점수는 3-1이 되고, 1사 만루가 이어져야 됐었다. 그런데 기록원이 무심코 롯데 3루주자 문규현이 홈에서 아웃됐다고 착각한 것이다. 타이밍상으로는 완벽하게 아웃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록원은 당연히 홈에서 아웃인줄 착각하고 눈은 포수의 송구를 따라 1루로 가면서 더블플레이 여부를 살핀 것이었다. 이것이 1차 실수였다. 기록원의 지시로 잠실 전광판은 2아웃이 찍혔고, 점수는 2-1로 나왔다.

그렇다면 정작 홈에서 판정을 내린 이기중 구심은 상황을 알고 있기에, 전광판의 오류를 정정했어야 했는데, 눈에 뭐가 씌였는지 전광판을 확인하지 않고 롯데 다음타자 손아섭의 볼 판정에만 신경을 쏟았다. 이것이 2차 실수였다. 심판의 전광판 정정 시그널이 없자 기록원은 문규현이 홈에서 세이프된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2차 실수의 결과 손아섭의 투수땅볼 때, 두산 투수 볼스테드는 2아웃 상황이라고 ‘당연히’ 여기고, 더블 플레이를 시도하지 않고 1루에만 송구해 타자주자만 잡아냈다. 이 사이, 롯데 3루주자 전준우는 홈을 밟았지만 전광판의 신호대로라면 3아웃 공수교대가 되는 상황이었다.


● 롯데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롯데는 2-1에서 점수가 올라가지 않고, 아웃카운트만 2아웃이 됐을 때, 항의하지 않았을까. 3루주자 문규현은 이 구심에게 세이프 여부를 확인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유는 문규현이 당연히 자기가 세이프인줄 믿고, 볼일이 급한 나머지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 데 있다. 그러나 문규현 외에 강민호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강민호는 손아섭이 아웃된 직후 선수들이 공수교대인줄 알고 있었던 순간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김응국 코치에게 제보했다. 김 코치가 다시 벤치의 김시진 감독에게 보고했고, 상황을 파악한 롯데는 어필을 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롯데의 어필 타이밍이 한 템포 늦은 것이 두산에 더욱 치명타가 됐다.


● 두산, 시간을 되돌리려 했으나…

두산에서도 사태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 확실히 한 명은 있었다. 포수 양의지였다. 양의지는 손아섭의 투수땅볼 때 볼스테드에게 자기에게 공을 던지라는 모션을 취했다. 전광판에 2아웃이 찍혀 있어도 사실은 1아웃이기에 더블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광판만 믿은 볼스테드는 1루에만 공을 던졌고, 양의지는 뭔가 불편한 듯 뒤를 돌아보면서 어떨결에 두산 야수들과 함께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롯데에도 보는 눈이 있었다.

두산 벤치는 심판진이 스코어 4-1, 2사 2·3루 상황에서 경기를 재개할 것을 지시하자 펄쩍 뛰었다. 두산 벤치는 “양의지가 홈을 안 찍어서 문규현이 세이프 판정을 받은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광판에 아웃카운트만 제대로 나왔으면 손아섭 타구 때 더블플레이를 위해 홈에 던졌을 것 아니냐? 더블플레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양보를 해서 최소한 1루가 아닌 홈에서 2아웃이 됐을 것이다. 4점째는 인정할 수 없다. 4점째가 되는 3루주자 전준우는 홈에서 아웃된 것으로 하고, 손아섭은 1루에 세이프된 것으로 한 뒤 스코어 3-1, 2사 만루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네야구에선 통할지 모르나 프로야구에서는 규칙만 있을 뿐 타협은 불가능했다.

억울했지만 두산은 규칙에 따라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사 2·3루에서 경기가 속개된 직후 하필이면 롯데 4번타자 최준석이 우월 3점홈런을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승부가 갈라졌다. 두산은 의욕을 잃었고, 롯데는 선발 전원안타-전원득점으로 두들겼다.

잠실|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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