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인 아시아] 수난의 아프간, 저력의 스포츠

입력 2014-09-18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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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축구 방글라데시전 0-1 아쉬운 패배

서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은 진정으로 ‘유명한’ 국가다. 부정적 의미에서다. 무장 이슬람정권인 탈레반과 자살폭탄, 과격 무슬림에 기반을 둔 테러조직 알 카에다 캠프와 국제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 비호국 등이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이란,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3국(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과 인접한 지리적 조건 탓에 옛날부터 숱한 외세의 침략을 겪어왔다.

바람 잘 날도 없었다. 200여년간 이어진 왕정이 1973년 군사쿠데타로 폐지돼 공화국이 됐고, 5년 뒤 또 다른 쿠데타로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섰다가 1년 만에 반소(련)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크고 작은 정변이 끊이질 않았다. 무장파벌들의 권력투쟁은 엄격한 이슬람 규율을 강요한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 1996년을 기점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가, 9·11테러로 분노한 미국의 2001년 10월 공격을 계기로 과도정부가 출범해 지금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의 스포츠 역사는 그래도 꾸준했다. 시한폭탄과도 같던 정세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다. 족적도 꽤 깊다. 아시안게임에서 통산 4개의 은메달, 5개의 동메달을 따냈다. 재미있는 것은 2개 대회 연속 시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남자태권도 네사르 바하위는 2006년 도하대회 74kg급 동메달에 이어 2010년 광저우대회 80kg급 은메달로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스포츠스타가 됐다.

1951년 뉴델리대회와 1954년 마닐라대회, 2002년 부산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아시안게임 무대에 도전장한 아프가니스탄 남자축구 또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많은 해외파가 눈길을 끈다. 대학생 등 전문 선수가 아닌 타 직업군도 일부 포함된 가운데, 2014인천아시안게임 엔트리 20명 가운데 8명이 해외에서 뛴다. 이 중 유럽파는 4명인데, 독일(3명)과 노르웨이(1명) 팀 소속이고 인도(3명)와 태국(1명) 팀에도 몸담고 있다. 독일파 대부분이 정국이 혼란스럽던 1990년대 유럽으로 이주한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나 학업까지 마쳤음에도 조국을 잊지 않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결과도 기대이상이었다. 방글라데시와의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0-1로 패했어도 충분한 저력을 발휘했다. “찬스 하나 못 살렸으니 만족할 수 없다”는 아프가니스탄 코다 다드 자히르 감독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아프가니스탄축구의 역대 최고 성적은 1951년 대회 때 기록한 4위다. 인천은 과연 어떤 땅으로 기억될까.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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