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만큼 값진 동메달.‘ 28일 인천 송도센트럴파크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 경보 20km 경주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3위로 들어와 동메달을 획득한 김현섭이 경주를 마치고 태극기를 들고 웃고 있다. 김현섭은 2006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세 번째 아시안게임 메달을 수확했다. 동아일보DB
한국 경보 불모지…실업팀 단 두 곳 뿐
김현섭, 사명감 하나로 세계 향한 도전
2연속 세계선수권 10위권 등 홀로 결실
“경보 훈련환경 꼭 조성됐으면 좋겠다”
외롭고 힘들지만,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옮긴다. 한쪽 발은 무조건 땅에 붙여 놓은 채 20km를 빠르게 걸어가야 하는 경보. 그래서 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레이스. 그러나 사명감 하나로 그 고된 길을 걸어온 김현섭(29·국군체육부대)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이제 홀가분하다”며 웃었다. 때로는 이렇게 금메달보다 값진 장면이 있다.
김현섭은 한국 경보의 희망이자 간판이다. 그가 또 한 번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현섭은 28일 인천 송도센트럴파크에서 열린 육상 남자 경보 20km에서 1시간 21분 37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아시안게임 메달이다. 세 대회 연속 시상대에 오른 한국 육상선수는 김현섭 외에 남자 높이뛰기의 이진택(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은메달, 1998년 방콕 대회 금메달, 2002년 부산 대회 금메달) 뿐. 김현섭은 한국 육상의 역사에 또 하나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좋은 기록을 지닌 선수들(중국 2명, 일본 2명)과 함께 뛰었는데, 그들이 레이스 초중반까지 개인기록보다 20초 정도 늦게 경기를 하더라. 내 페이스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8km 지점에서 속도를 냈다”며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킨 게 메달의 비결인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은 경보의 불모지다. 경보선수가 뛸 수 있는 실업팀이 두 곳뿐. 선수가 지켜야 하는 규정이 엄격한 종목인데도 지도자와 함께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 김현섭은 그런 한국에서 홀로 아시아와 세계로 향하는 길을 냈다. 김현섭이 걸어간 길이 바로 한국 경보의 트랙이었다. 금빛 메달 하나 없지만, 한국 경보에는 큰 의미가 있는 기록들을 하나씩 쌓아갔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km 경보에서는 1시간21분17초로 6위에 오르면서 한국 경보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10위 안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3년 모스크바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0위를 차지해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1997년 아테네 8위, 1999년 세비야 6위)에 이어 한국 육상 전체에서 두 번째로 두 대회 연속 세계선수권 10위권 진입이라는 역사를 썼다. 이제 그의 당면 목표는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0위 안에 진입하는 것. 그 꿈만 이뤄진다면, 김현섭을 앞세운 경보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김현섭은 “많은 분들의 성원 덕분에 이번 대회에서도 메달을 걸 수 있었다. 결국 금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시안게임 세 번 참가해 모두 메달을 얻은 건 정말 기쁜 일”이라며 “특히 세 번째 대회였던 인천에서 홈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동메달을 딴 건 앞으로 내게 정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앞으로 꼭 경보 선수가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을 강조했다.
인천 l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