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백지훈 “다시 승리의 파랑새가 되고 싶다”

입력 2015-02-0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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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수원으로 컴백한 ‘파랑새’ 백지훈은 간절함의 힘으로 진정한 부활을 자신하고 있었다. 스페인 말라가 전지훈련에 앞서 진행된 경남 남해 캠프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남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 사커 피플 수원 MF 백지훈

무릎부상 후유증·울산 임대 등 시련
“수원 유니폼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지금은 밑바닥…더 떨어지면 은퇴”

“그게 유효할까요?”

스페인 말라가 전지훈련에 앞서 1월 경남 남해에서 진행된 동계훈련 캠프에서 만난 수원삼성 미드필더 백지훈(30)의 첫 마디였다. 그의 별명은 ‘파랑새’였다. 공격수가 아닌 만큼, 빈도는 잦지 않았지만 그의 득점은 대개 결승골이 됐다. 자연스럽게 그에게는 행복과 행운의 상징인 ‘파랑새’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백지훈은 “다시 ‘승리의 파랑새’란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오랜 갈증 때문이었다. 무릎 연골 부상으로 통째로 날린 2011년을 포함해 지난 4년은 안타까웠다. 임대 신분으로 뛴 지난해 울산현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린 상주상무 시절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한때 백지훈은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통했다. 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2008년 베이징)∼월드컵대표(2006년 독일)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지만, 금세 잊혀졌다. 추억의 이름이 됐다. 그렇게 상처만 입고 돌아왔다. 재기와 부활의 꿈. 그는 훈련복 왼쪽 가슴에 붙은 수원 엠블럼을 툭툭 치며 “간절함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 축구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파랑새가 컴백했다.

“그 표현 자체가 동기부여다. 부상 중일 때도, 군 시절에도 많은 걸 배웠지만 떳떳하지 않았다. 수원 유니폼이 그리웠다. 뛰고 싶었고, 컴백을 열망했다.”


-왜 간절했을까.

“포지션에 좋은 동료들이 많다. 물론 알고 있었다. 감수할 부분이다. 이는 어느 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정원식) 축구는 바로 내가 원한 축구다. 꼭 함께 하고 싶었다.”


-밖에서 본 수원은 어땠나.

“재미있었다. 작년 임대 계약에 따라 수원전에는 뛸 수 없었는데, 관중석에서 봐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울산이 이기길 바라는 한편, 수원이 이기길 희망하는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수원과 어떻게 다시 선이 닿았나.

“작년 12월 말 연락이 왔다. 마침 고향(경남 사천)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연봉이 문제가 아니었다. 협상도 길지 않았다. 전역 후 바로 왔어야 했는데, 일이 꼬여 그러지 못했다.”


● 수원이 그리웠다!


-복귀 실패도 염두에 뒀는지.

“고민이 많았다. 임대 제의도 있었다. 그건 아니었다. 밖에서 수원과 FC서울의 슈퍼매치를 보면 뜨거운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내가 그 일원이고 싶었다.”


-수원에 첫 걸음을 내디딘 2006년을 기억하나.

“당시 FC서울 소속이었는데, 독일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이적 소식을 접했다. 깜짝 놀랐다. 왜 내가 이적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더욱이 라이벌이라니 당황했다. 처음에는 거부했다. 물론 수원 팬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고. 그래도 수원은 운명이었다.”


-이적 첫 해 활약도 대단했다.

“처음 입은 파란 유니폼은 익숙하지 않았다. 부담이 컸고, 팬들의 환호조차 야유로 들렸다. 자고 일어나는 게 무서웠으니. 그러나 차범근 감독님께서 내가 뛸 환경을 열어주셨다. 나도 몰랐던 장기를 끄집어내셨다. 역전골에, 결승골에…. 골만 넣으면 이겼다. 감동이었다.”


-지금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바닥으로 추락해버린,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싶다. ‘한 물 갔다’는 이야기를 떨쳐내고 싶다. 그래도 아직 쓸 만한 놈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다. 정상을 찍어보진 못했지만 지금은 밑바닥이다. 더 떨어질 곳이 없다. 또 추락하면 그건 투명인간이고, 남은 길은 은퇴뿐이다.”

남해|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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