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악의 연대기’ 손현주 “적당히 하는 연기, 용납 못해요”

입력 2015-05-21 0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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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내내 외롭고 고독했어요. 유배당한 심정이었죠.”

배우 손현주는 영화 ‘악의 연대기’ 촬영기를 돌아보며 ‘고독’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순간적으로 극 중 최창식에 빠진 듯 했다. 그의 표정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묻어났다.

“병원에서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술과 담배를 입에 댈 수 없는 상황이니 로케이션 촬영 후에는 숙소에 들어갔죠. 혼자 라벤더 향초 켜놓고 유배 생활을 견뎠어요. 다들 아프다고 안 놀아주더라고요. 하하.”

손현주는 지난해 봄 갑상선에서 암이 발견돼 수술했다. 그의 투병으로 5월말로 예정된 ‘악의 연대기’ 촬영은 한 달여 미뤄졌다. 손현주는 그동안 묵묵히 기다려준 동료들을 위해 회복하자마자 촬영에 합류했다. 그러나 손현주가 건강 문제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 것은 아니다. 그는 최창식을 연기하면서 정신적인 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소모했다.

“아마 현실의 최창식이라면 1주일도 못 견딜 것 같아요. 체력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더라고요. 몸이야 쉬면 회복되잖아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피곤한 것은 못 견딜 수준이었어요.”

‘악의 연대기’는 특진을 앞둔 최고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최창식 반장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담당자가 되어 사건을 은폐하기 시작하면서 더 큰 범죄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손현주가 맡은 15년차 형사 최창식은 그 누구에게도 범행을 고백하지 못하고 홀로 괴로움에 빠진다. 손현주는 맡은 캐릭터대로 촬영 내내 비슷한 감정선을 유지했다.

“사건이 벌어진 후 동료들에게 말 못 하니까 극 중인데도 불구하고 괴로웠어요. 고독감 때문에 힘든데 그 와중에 백운학 감독은 디테일한 디렉션을 요구하더라고요. ‘몸을 많이 움직이지 말고 눈으로만 분노 슬픔 좌절 배신 배반 등 한 8가지를 표현해달라’는 거예요. ‘감독님이 한번 해보세요’라고 몇 번은 신경질 냈어요(웃음).”

손현주는 “절대 고독을 만든 내 몸에 감사하고 현장과 환경에 감사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감정이 영화에 더 잘 나온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손현주는 2012년 드라마 ‘추적자’를 통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후에는 드라마 ‘황금의 제국’과 ‘쓰리 데이즈’ 등 어두운 느낌의 작품을 주로 해왔다. 특히 영화 ‘숨바꼭질’(2013)과 이번 ‘악의 연대기’ 그리고 한창 촬영 중인 ‘더 폰’은 세 작품 연속 스릴러 영화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필모그래피 라인이 너무나 절묘하다.

“돌아보면 ‘추적자’ 이후로 4~5년 동안 쥐색 느낌의 작품을 많이 했네요. 일부러 그렇게 가려고 한 건 아니에요. 스릴러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요. 처음에 ‘악의 연대기’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스릴러인지도 몰랐다니까요. 저, 스릴러 전문 배우 아닙니다. 하하”

손현주는 “예전에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 엄마 팬들에게서 너무 멀리 온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대로 손현주는 최근 드라마에서는 대통령과 재벌그룹 아들 등 이지적인 캐릭터를 주로 해왔다. ‘악의 연대기’ 속 역할도 권력에 대한 욕망에 크고 작은 비리를 눈 감고 넘어가는 인물. 그러나 손현주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솔약국집 아들들’ ‘이웃집 웬수’ 등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던 배우였다.

“엄마의 손길을 떠나와서 그리워요. 엄마들은 집 나간 아들 기다리듯 ‘빨리 돌아오라’며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이제 어머니 품으로 가야죠. 엄마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손현주. 선배들을 따르던 그도 어느덧 데뷔 24년차 중견 배우가 됐다. ‘악의 연대기’ 속 형사반장 최창식처럼 후배가 많이 생겼다.

“제가 선배면 뭐 얼마나 선배겠어요. 연기 대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후배들에게 굳이 딱딱하게 할 필요 있나요. 동생 혹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야 촬영이 더 재밌고 좋아져요. 그래야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거든요. 굳이 제 입으로 선배라고 안 해도 지들이 선배 혹은 형이라고 하니까 그럼 된 거죠.”

그러나 연기에 있어서는 절대 설렁설렁 봐주는 법이 없다. 손현주는 “‘적당히’는 용납 못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후배들에게도 ‘스케줄에 대해서 짜증내고 투정부리지 마라’고 얘기해요. 저도 누가 ‘제발 연기해달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당장 제가 없어져도 다들 관심도 없을 걸요? 제가 좋아하고 선택한 거니까 끝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곧 스스로를 향한 채찍이기도 하고요. 싫으면 연기 그만 둬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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