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의 프로그램들도 이처럼 목 좋은 곳에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대와 경쟁작들을 분석해 가장 시청률이 잘 나올만한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해도 다른 여러 요소들에 의해 실패를 할 가능성이 있는만큼 프로그램의 아이템 못지 않게 어느 시간대에 편성을 받느냐도 못지 않게 민감한 문제로 다뤄진다.
이런 면에서 SBS '아빠를 부탁해'는 편성의 혜택을 잘 받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부녀관계 회복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시작해 매력적인 출연자들과 에피소드로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예상보다 초라한 시청률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를 부탁해'는 설 특집 파일럿 예능으로 시작했을 당시 13.5%(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했다. 이어 지난 3월 정규편성이 된 후 토요일 밤 8시 45분에는 첫방송 시청률 7.0%로 산뜻한 출발을 해 경쟁사 주말 드라마에 밀렸던 주도권을 가져올 대항마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수치를 과신한 탓이었을까. '아빠를 부탁해'는 묘한 강제이주를 하게 된다. 바로 가장 치열하다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이 된 것.
당시 이 시간대에는 이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SBS로서는 'K팝스타 시즌4'가 떠난 빈자리를 메꿀 유일한 선택이 '아빠를 부탁해'의 이동을 울며 겨자먹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예능국 관계자는 "'아빠를 부탁해' 이동을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왜 잘 굴러가는 프로그램을 굳이 이동시키느냐는 의견과 더불어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붙어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시간대가 바뀌기 직전의 방송분 시청률이 7.2%였던 반면 일요일 저녁 시간대로 이동 후 첫 방송분은 4.9%의 수치를 나타낸 것. 여기에 지난 12일 방송분 시청률도 5.8%를 기록해 파일럿 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진을 겪고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아빠를 부탁해’는 방송사는 다르지만,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전체적인 포맷이 비슷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먼저 보던 프로그램, 즉 익숙한 프로그램에 눈이 머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새로운 시청자를 흡수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경쟁 프로그램 ‘복면가왕’까지 상승세를 타면서 ‘아빠를 부탁해’는 샌드위치 상태에 처하게 됐다.
이같은 부진에 한 방송 관계자는 "'아빠를 부탁해' 입장에서는 편성에 많은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시청자들을 꽤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 '아빠를 부탁해'가 있던 자리에서 방송 중인 '동상이몽'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며 "'아빠를 부탁해' 시간대 이동 결정은 이득이 없는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사진=SBS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