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주말 야구여행] 눈물 젖은 그라운드서 뛰어 봤는가? 그것이 인생이다

입력 2015-07-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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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승엽이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KBO리그 최초 개인통산 400홈런을 친 뒤 팬들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순간, 아버지 이춘광 씨가 손수건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장면이 전광판으로 나오고 있다(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음). 불혹에 접어든 아들을 바라보는 칠순 아버지의 마음은 여전히 애틋하다. 스포츠동아DB

이승엽 400홈런…관중석 아버지의 눈물 애틋
스프링캠프 지옥훈련 힘들어서 울었던 장운호
통한의 역전패 한국리틀야구 선수의 눈물까지


#1. 삼성 이승엽(39)의 아버지 이춘광(72) 씨. 6월 3일 포항구장에서 아들이 KBO리그 통산 400홈런을 쳤을 때, 손수건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불혹의 아들 몰래 관중석 한편에 자리 잡고 연신 눈물을 훔치던 칠순 넘은 아버지의 모습이란…. 전광판을 통해 비친 그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장면들이 눈앞에 휘몰아칩디다. 승엽이가 어릴 때 야구 시작했던 장면, 피나는 노력을 했던 장면, 중·고등학교를 거쳐 프로에 들어가서 승승장구하던 장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하고 베이징올림픽 때 홈런 치던 장면, 일본에서 잘 하다 수술하고 부진에 빠졌던 일까지…. 그리고 ‘하늘로 먼저 간 승엽이 엄마가 여기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빗물처럼 쏟아집디다. 요즘 야구시키는 학부모들도 아마 마음 졸이면서 아들을 지켜볼 겁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래요.”

그 오랜 세월 남몰래 흘린 아버지의 속울음이 오늘날 ‘국민타자’를 탄생시켰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강해보이고, 아들에게 유독 엄격한 우리네 아버지도 때로는 아들 때문에 운다.

한화 장운호는 올해 초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에서 타격훈련을 하다 너무 힘들어 혼자 2루쪽으로 사라진 뒤 울었다. 그러나 그 눈물을 딛고 더욱 강해져 돌아왔다(위쪽 사진). 12세 이하 리틀야구대표팀의 송하늘은 제69회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 결승에서 대만에 패해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펑펑 울면서 방송 인터뷰를 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스포츠동아DB·KBS뉴스 화면 캡처


#2. “스프링캠프 때 백스톱 쪽에서 타격훈련을 하다 갑자기 사라졌어. 어디 있나 봤더니 혼자 2루쪽에 가서 울고 있더라고. 힘들었던 모양이야.”

한화 김성근(73) 감독은 올해 초 일본 고치 스프링캠프 때 있었던 그 일부터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누구나 다 아는 ‘김성근식 지옥훈련’. 구경꾼들이야 쉽게 생각할지 몰라도, 선수들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느낌이다. 프로 데뷔 3년차의 스물한 살 유망주. 그렇잖아도 풀잎처럼 앳돼 보이는 장운호는 그 지옥훈련을 경험하다 울어버리고 말았다.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 얼마나 힘들었으면 눈물을 흘렸을까. 그러나 운다고 타협은 없었다.

“힘들었어요. 허리가 너무 아팠지만 계속 쳐야 하니까. 정말 힘들어서 울었습니다.” 장운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쑥스럽게 웃는다.

장운호는 최근 주목 받고 있다. 전반기 막바지인 7월 15일 청주 롯데전에서 홈런 1개와 2루타 2개를 포함해 6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후반기 개막전인 21일 수원 kt전에서도 4타수 2안타를 때렸다. 아직 올 시즌 19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3할대 타율(0.306)을 올리며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빠른 발도 매력이다. 김 감독도 “한화의 미래”라며 “장운호가 주전 외야수로 자리를 차지하는 날 한화의 미래가 밝아진다”고 말했다.

남자가 힘들어서 울었다는 게 어쩌면 창피한 일.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 남몰래 흘린 그 눈물이 있었기에 장운호는 더 강해졌는지 모른다.

#3. “엉엉. 제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엉엉. 내년에는 꼭 우승하겠습니다.” 어린 선수가 마이크 앞에서 펑펑 울며 인터뷰를 했다.

지난해 29년 만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제패해 우리에게 감동을 전했던 12세 이하 리틀야구대표팀. 올해 새롭게 대표팀을 꾸려 중국 구이린에서 열린 제69회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에 참가했지만, 결승에서 대만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6회말 마지막 수비에서 끝내기안타를 맞고 패했다.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그렇게 울었을까. ‘리틀야구 성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 라마데 스타디움을 밟지 못하게 된 어린 선수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 모습이 가슴 찡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면 됐다. 그대들이 챔피언이고, 한국야구의 미래라는 것은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로버트 헤릭은 ‘눈물은 눈이 표현할 수 있는 멋진 언어’라고 했다. 흔히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남자도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것이다. 이승엽 아버지의 짠한 눈물, 리틀야구선수의 분한 눈물, 장운호의 몰래 흘린 눈물, …. 팬들의 환호성 뒤로 흐르는 사연 많은 남자들의 그 순수한 눈물이 한국야구의 밑거름이다.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고, 그라운드는 바로 우리네 인생의 무대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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