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여자 시상식 때만 남북대화?

입력 2015-08-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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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축구대표팀 권하늘-북한여자축구대표팀 라은심(오른쪽).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말 못 걸고 냉랭
시상식에선 남북 선수들 일부 옹기종기 대화


“내 인터뷰는 하갔는데, 조국명은 똑바로 부르시라요!”

여전히 딱딱했다. 가깝지만 먼 이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2015동아시안컵(1~9일·중국 우한)에서 드러난 북한축구의 행보다. 국제대회마다 북한의 명칭 논란은 빠지지 않는 단골 이야깃거리다. 북한은 ‘북한’이라는 표현 자체를 원치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또는 ‘북조선’으로 부를 것을 요구한다.

물론 우리로선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 대개 ‘북측’이라고 부르는 국내 취재진이 공식 기자회견이나 믹스트존에서 무심코 ‘북한’이라고 언급하면 북한 선수단과 동행한 통역이 먼저 날 선 소리를 낸다. 갑작스러운 고성에 외국 취재진이 어리둥절해하기 일쑤다. “왜 화를 내냐”고 묻는 외신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것 역시 고역이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피차 똑같다.

북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적국’인 한국 기자들과의 접촉 자체를 최대한 피하려 한다. 남자 김창복 감독이나 여자 김광민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소감을 전해야 하는 데 반해, 선수들은 믹스트존을 지나치면 그만이다. “일 없다”며 거절하는 것은 그나마 애교. 대부분 “○○ 선수, 잠깐 인터뷰 합시다”라고 요청하는 한국 기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았다.

북한 통역은 “믹스트존에선 인터뷰를 하라”고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소용없다. 가물에 콩 나듯 카메라 앞에 설 때가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강조해 분위기를 싸늘하게 했다. 달변가에 가까운 김창복 감독의 모습이 이상하게 비쳐질 정도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TV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의 시간이 나도 통역이 있으면 남북 감독들 역시 말을 섞지 못한다. 8일 여자 남북대결 직후 어렵게 붙잡은 김은향은 “김정은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에 우승으로 보답해 기쁘다”는 틀에 박힌 말을 남겼다.

숙소에서도 항상 냉랭했다는 후문이다. 동아시안컵에선 각국 선수단이 똑같은 호텔에 묵었는데, 식사와 피트니스센터 등에서 간혹 동선이 겹칠 때가 있었다. 태극전사·낭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북한 선수들과 만나면 인사도 못 하고 말도 못 걸었다. 여자 남북대결이 끝나고 열린 시상식에서 양 팀 선수단 일부가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눈 장면은 극히 드문 경우였다.

북한의 잠행은 또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공식 일정을 바꿔 혼선을 주곤 했다. 공지된 북한의 스케줄에 따라 훈련장에 가면 현장 관리인으로부터 “오늘 (북한은) 오지 않는다”는 답변을 자주 들어야 했다.

우한(중국)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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