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수말 교배장면 민간 공개…‘신혼방’은 관광명소

입력 2015-10-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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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육성목장이 렛츠런팜제주로 거듭났다. 앞으로 생산농가 교배지원, 등록제도 운영, 진료서비스, 연구개발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렛츠런팜제주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경주마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렛츠런팜제주’에 가보니…

여의도 2/3 면적…마사 14개동 466개 마방
생산지역에선 말 교배·재활치료 등 담당
워킹머신·말수영장·실내원형마방 등 눈길


가을이 단풍잎 속으로 깊이 들어간 지난 17일. 제주도 한라산 기슭 중산간 지역에 있는 렛츠런팜제주엔 드넓은 초지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풀이 파란 걸 보니 아직 가을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은 듯 했다. 나무 울타리로 경계를 구분한 말 우리가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그림과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스위스의 모습 같았다. 군데군데엔 한라산에서 소풍 온 고라니 가족들도 말들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가족들과 함께 온 관광객들이 가끔씩 눈에 띄었다. 멀리선 한라산이 눈을 감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한국 말산업의 메카 렛츠런팜제주

신제주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리는 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육성목장이 마사회의 새로운 브랜드 ‘렛츠런팜제주’로 새롭게 태어났다. 렛츠런팜제주는 국산 경주마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 1991년 1월에 첫 삽을 떠 4년 뒤인 1995년 9월 문을 열었다.

공식면적은 약 217만m²로 여의도의 2/3에 달한다. 마사 규모만 연면적 1만4619m²에 14개동 466개의 마방이 있다. 주요 업무는 우수 씨수말 운영을 통한 생산농가 교배지원, 경주마 생산농가 등록제도 운영, 동물병원 운영을 통한 진료서비스 제공, 생산·육성분야 연구개발(R&D) 및 기술전파, 육성목장 시설개방을 통한 민간 육성 지원 등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 말산업의 출발점인 셈이다.

렛츠런팜제주는 크게 두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생산지역과 육성지역이 그것이다. 생산지역은 말 그대로 교배 등 경주마의 생산을 담당한다. 이날 처음 찾은 곳은 말종합병원. 경주 중 다친 말이나 병든 말의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날도 말 한 마리가 수술대에 누워 치료를 하는 모습이 CC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수술 중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수술이 끝난 말들은 회복실로 옮겨진다. 회복실에는 다리에 붕대를 감거나 얼굴을 다친 뒤 재활 중인 말들이 눈에 띄었다. 호수처럼 크고 맑은 눈을 보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눈을 껌벅껌벅 거리는 모습이 힘겹게 보였다.


● 우수 씨수말 10마리 보유…교배장면 민간에 공개

생산지역의 하이라이트는 교배소. 씨수말과 씨암말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다. 한국마사회는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해 이곳에서 우수말의 ‘혈통’을 말 생산농가에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교배를 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있는 씨수말은 메니피, 포레스트캠프, 호크윙, 윈쿨캣, 피스룰즈, 오피서, 샤프휴머, 록하드텐, 한센, 티즈원더풀 등 10마리다.

그러나 이날은 ‘말들의 사랑’을 볼 수 없었다. 말은 해가 길어지는 3월에서 6월까지 주로 교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덩그러니 있는 ‘신혼방’만이 말들의 뜨거운 사랑을 말해주고 있었다.

흔히 혈통이 우수한 수말의 정액 한 방울의 값은 다이아몬드 값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교배료가 비싸다. 렛츠런팜제주서 교배비가 가장 비싼 씨수말은 ‘메니피’다. 메니피는 한국마사회가 30억원을 주고 2006년에 도입한 말로 11전(5/4/1) 전적에 총 수득상금만 51억원에 달했던 명마다. 한번의 교배로 메니피가 챙기는 돈은 700만원. 지난해에는 1000만원 넘게 받았지만 농가들의 읍소에 300만원을 내렸다고 한다.

한국마사회 홍보팀 양호준 차장은 “교배소는 관람객들에게 말들의 사랑을 공개하는 곳”이라며 “민망해 하면서도 호기심을 갖고 보는 성인들의 인기 관광명소”라고 소개했다.

실내원형마당, 워킹머신, 말수영장

생산지역을 떠나 육성지역으로 이동했다. 차로 가야할 만큼 제법 거리가 있다. 육성지역은 말을 길들이고 훈련시켜 최고의 경주마로 키워내는 곳이다. 스포츠로 치면 태릉선수촌쯤 된다. 육성지역에 들어서니 35개의 방목지에 야외주로 1000m, 실내주로 300m, 직선주로 800m 등 훈련을 위한 시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 실내원형마방과 워킹머신, 말수영장 등이 낯선 훈련시설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경주마로 다듬어진 말들을 경매하는 실내 말경매장도 이채로웠다. 렛츠런팜제주 생산지원담당 신원호 대리는 “경주마 평균 낙찰가는 4000만∼5000만원 선인데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경매가 있는 날엔 마주와 조교사 등 마방간 눈치작전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지난 2012년엔 부마 ‘메니피’와 모마 ‘하버링’의 자마가 2억6000만원에 거래된 현장이기도 하다.

렛츠런팜제주는 국산마 품질향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말 생산과 육성의 성장기를 넘어 말 운동생리 등 스포츠과학을 접목시키는 절정기를 향해 뛰고 있다. 렛츠런팜제주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기에 파트Ⅲ의 한국 경마가 미국 유럽 등과 같은 파트Ⅰ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제주 l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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