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변한다,야구판이 변한다

입력 2015-12-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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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10개 구단이 승리수당을 포함한 ‘메리트 시스템(성과급제)’을 내년부터 금지했다. 위반 시 10억원의 벌금을 물린다. 총알(돈)이 두둑했던 삼성은 그동안 메리트 시스템 폐지에 미온적이었지만, 합리적 지출을 새로운 지향점으로 삼으면서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스포츠동아DB

프로야구 10개구단 단장들이 합의한 메리트 시스템 폐지… 삼성 찬성의 의미는?


자금력 바탕 메리트 주도하던 삼성→제일기획 이관 뒤 자립경영 체제→용병 다년계약 반대 “쓸때는 쓴다”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끝으로 실질적인 2016시즌이 시작됐다. 그 서막은 9∼10일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윈터미팅이었다. KBO리그 10개 구단 단장들과 실무자들이 1박2일에 걸쳐 현안을 논의했다. 실행위원회를 겸한 이 자리에서 단장들은 한 가지 합의를 했다. 바로 승리수당을 포함한 ‘메리트 시스템(성과급제)’ 금지였다. 위반 시 10억원의 벌금을 물리고, 내부고발자에게 10억원의 포상금을 주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KBO 이사회의 의결을 남기고 있지만 채택이 유력하다. 어떤 일은 표면보다 이면의 맥락이 훨씬 중요한데, 이 사안이 그렇다. 그 과정을 추적해보면 한국야구계의 오피니언 리더 격인 삼성의 운영 패러다임 변화가 뚜렷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 왜 삼성은 반대하지 않았나?

익명을 요구한 모 단장은 “메리트 시스템 폐지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얘기였다. 이번에 안건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하는 구단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메리트 시스템 폐지에 미온적이었던 구단은 어디였을까. 바로 삼성이다. 야구계 한 인사는 삼성을 두고 “총알(돈)이 두둑한데 쓰지 못하게 하는 제도에 찬성할 이유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야구계에선 “삼성이 메리트를 걸면 대구 시내에서 5만원권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과장 섞인 농담이 돌았다. 그만큼 삼성의 메리트 시스템이 타구단의 기(氣)를 죽일 정도로 막강했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이 때문에 타구단 선수들이 삼성 사례에 견줘 프런트를 압박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올 시즌 메리트를 두고 잡음을 냈던 롯데가 폐지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당초 벌금액을 5억원으로 하자고 했는데 롯데가 “10억원으로 하자”고 강력히 주장해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살림 규모가 작은 구단들은 메리트 시스템 폐지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삼성까지 동참한 것은 음미할 대목이다. 모 단장은 “삼성이 (일부 선수들의 해외원정도박 혐의 이후) 지금 돈을 쓸 분위기가 아니지 않겠는가? 게다가 삼성야구단의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면 돈 쓰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긴축이 아니라 합리적 지출을 지향하는 삼성

과거 삼성이 차원이 다른 양적 투자로 타구단을 압도했다면 이제 합리적 투자로 효율경영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긴축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쓸 필요가 있으면 아낌없이 쓰겠다는 기조는 유효하다. 일례로 외국인선수 다년계약 도입에 대해 가장 강력히 반대한 팀이 삼성이었다. 한 단장은 “다년계약을 도입하면 스몰마켓 팀도 특급 외국인선수를 데려올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삼성이 이 제도를 반대했다는 것은 곧 특급 외국인선수에게 대형투자를 감행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의미”라고 해석했다. 제일기획의 우산 아래 들어가도 성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목표는 살아있지만, 이제는 더 따져보고 원칙에 입각해 쓰겠다는 삼성의 방향성이 읽힌다.

삼성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곧 좁게는 한국프로야구, 넓게는 한국프로스포츠의 지형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성적이 아니라 자립 생존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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