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16경기 모두 승점…현대건설 야물어졌다

입력 2015-12-3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현대건설 황연주(왼쪽 세 번째)가 29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NH농협 V리그’ KGC인삼공사전 도중 공격에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시즌 개막 후 16경기에서 모두 승점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스포츠동아DB

‘단일리그 최다연속경기승점’ 1위 진기록
수비 에밀리·베테랑 한유미·김세영 영입
탄탄해진 수비…경기마다 꼬박꼬박 승점

현대건설은 29일 인삼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2015∼2016 NH농협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첫 경기에서 인삼공사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고 시즌 13승째(3패)를 챙겼다. 최근 4연승을 기록 중인 현대건설은 올 시즌 치른 16경기에서 모두 승점을 따내는 진기록을 세웠다.

과거 승리 중심이었던 V리그가 승점제를 도입한 것은 2011∼2012시즌부터다. 국제배구연맹(FIVB)의 룰에 따랐다. 여자부 단일시즌 최다연속경기 승점은 2006∼2007시즌 흥국생명의 16연속경기. 현대건설은 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까지 포함하면 18연속경기로 여자부 역대 최다연속경기 승점 신기록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V리그 역대 최다연속경기 승점 기록은 V리그 초반 압도적 경기력을 자랑했던 남자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38·24·22연속경기다.


●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현대건설

현대건설 양철호 감독은 “남들이 해보지 않은 기록이라 의미가 있다. 이번 시즌 우리 선수들이 잘해줘서 가능했다. 대견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첫 시즌에 가장 변신을 잘한 현대건설은 요즘 빈틈이 없다. 지난 시즌 작두를 타듯 세트별로 널뛰기를 했던 약점이 사라졌다. 양 감독이 시즌을 앞두고 선언했던 ‘토털 배구’가 경기를 거듭하면서 선수들에게 잘 스며들었다. 그 덕분에 선수 한두 명의 컨디션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기는 없다. 세트마다 경기력의 편차가 없어진 현대건설은 어떤 상대를 만나도 기준 이상의 플레이를 한다.

비득점부문 전체 성적에서 리시브 5위, 디그 4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세트 부문은 2위다. 수비가 강하지는 않아도 다양한 연결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점수를 뽑아내는 능력이 지난 시즌에 비해 향상됐다. 여기에 범실이 크게 줄었다. 30일 현재 275개로 IBK기업은행에 이어 2위다. 지난 시즌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폴리를 영입해 우승을 기대했지만 실패했던 교훈이 만들어낸 드라마틱한 변화다.



실패 교훈에서 극적 대반전 일군 양철호 감독

양 감독은 실패의 이유를 제대로 봤다. 선수 한 명에 의존하는 ‘서커스 배구’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커스가 펼쳐지는 공간은 커다란 기둥 한 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기둥이 흔들리면 서커스는 없다. 지난 시즌 폴리에게 공격이 집중되면서 현대건설은 상대가 예측하기 쉬운 큰 공격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다른 공격수의 좌절감은 결국 세트마다 하늘과 땅을 오가는 작두타기로 이어졌다.

양 감독은 수비와 스피드의 중요성도 확인했다. 폴리는 파워와 타점이 높았지만 수비가 젬병이었다. 다른 팀보다 높이는 월등했지만 수비는 허약했던 현대건설이다. 배구에선 공격을 잘하는 팀이 아니라 공을 코트에 떨어트리지 않는 팀이 이긴다. 양 감독의 선택은 수비가 되는 레프트 에밀리였다. 그 결정으로 현대건설은 리시브와 수비가 탄탄해졌고, 플레이가 빨라지면서 다양한 공격이 가능해졌다. 부상으로 한 시즌을 쉬었던 정미선의 가세와 분배에 눈을 뜬 세터 염혜선의 각성 덕분에 쉽게 공략당하지 않는 팀이 됐다.


베테랑의 경험과 고난을 함께 극복한 자신감이 뭉쳐 신기록 달성

현대건설의 숨겨진 장점은 피라미드처럼 짜여진 선수단 연령대 구성에 있다. 몇 년 전 과감한 세대교체로 팀이 갑자기 어려졌지만, 젊은 팀은 안정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지난 시즌을 앞두고 베테랑 한유미와 김세영을 영입했다.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베테랑은 평소 팀이 잘 나갈 때는 빛나지 않지만 위기에서 역량을 보여줬다. ‘늙은 노새가 힘은 없어도 가는 길은 많이 안다’는 말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이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공격으로 활로를 열어줬다. 힘과 높이에선 어린 선수들에 뒤지겠지만, 눈과 경험이 만들어주는 지혜 덕분이었다. 이들은 가끔 팀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길잡이 역할을 잘해줬고 승점을 챙겨준 주역들이었다.

현대건설은 올 시즌 개막 직후 3경기 연속으로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흥국생명에는 2-1로 앞서다가 4세트를 내주고 역전패했지만, 이후 GS칼텍스,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선 먼저 2세트를 내주고도 기어코 따라잡아 3-2 역전승을 거뒀다. 패배 일보직전에서 되살아났던 이 두 경기의 경험이 선수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후 현대건설의 맷집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