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레미제라블’ 전나영 “‘서편제’에 감명받아 여기까지”

입력 2016-03-04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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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전나영과의 만남을 표현하자면, 잠시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게 아니다. 달랐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에서 자란 그는 환경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한국에 살았던 이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17세가 되던 해에 자신에게는 철학이 없다며 잘 하고 있던 학업을 중단했고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거리감을 느낀 것도 사실. 어쩌다 한국 청년들의 취업 문제까지 꺼내게 됐고 꿈을 이루기는 너무 힘든 현실이라고 대화를 하던 중 “언니, 꿈을 포기하지 마요”라고 손을 잡은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나영은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펼쳤다. 22세 때 네덜란드 ‘미스사이공’(2011~2012)에서 킴 역을 맡은 전나영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동양인 최초로 ‘레미제라블’의 ‘판틴’ 역을 맡아 활약했고 올해 한국 무대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네덜란드 교포 3세인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첫 도전이지만 마음은 편했던 그는 “모든 게 한국 팀 덕분”이라고 했다. 전나영은 “한국은 정(情)문화, 공동체의식이 강한 것 같다. 여기는 배우들 모두 ‘레미제라블’ 점퍼를 입고 다녔다. 영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개인의 성향을 중요시하니까. 아마 배우들이 ‘내 옷은 내가 알아서 입는다’라고 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묻자 ‘고생하셨습니다’였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가끔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 때문에 이해를 못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다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하더라. 이해를 못했다. ‘고생’은 힘들다는, 그러니까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라고 알고 있어서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엔 어떤 의미인줄 알았다. 근데 생각해보면 고생이긴 하다. 공연을 마치면 정말 힘드니까. (웃음)”

전나영은 처음 ‘레미제라블’을 본 것은 18세. 공연을 본 첫 소감은 감흥이 없었다고. 그는 “처음 봤을 때 별로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며 귀엽게 자리 탓(?)을 하고 “이후 작품을 정말 좋은 자리에서 더 봤을 때 감탄을 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레미제라블’ 30주년 공연에 도전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영국 런던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당시 ‘미스사이공’에서 ‘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웨스트엔드 팀에서 ‘코제트’를 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갔는데 내 목소리가 그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에 ‘에포닌’을 연기하려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게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불러보라고 해서 막판에 ‘판틴’역을 맡게 됐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전나영이 맡은 ‘판틴’은 남편에게 버림을 당하고 딸 ‘코제트’를 위해 살아가는 여성.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함께 일하는 여자들에게 미움을 사다 쫓겨나 창녀로 연명하다 폐결핵을 앓고 죽게 된다. 처음 이 역을 맡았을 때 큰 한이 느껴졌다고. 하지만 힘든 감정을 마음에 꼭 간직하진 않았다. 그는 “배우는 테크니컬하게 감정을 쏟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무대 위에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처음 더블캐스팅으로 무대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역할이 원캐스팅이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같은 역할을 7~8번을 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처절하다고 해서 내 생활까지 그 감정을 끌어들이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몰입하되 무대 밖에서는 툭툭 털고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나영은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꾸진 않았다. 오히려 싫어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고. 이유를 물으니 “자신의 눈으로는 뮤지컬이 돈을 벌려고 하는 비즈니스로 보였다”며 “고급적인 문화라서 괴리감이 느껴졌다”라고 답했다. 평소 음악과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퍼포먼스 아트를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사람들보다 이른 나이에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고 느껴졌다. 이에 잠시 학업을 중단했다.

“내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궁금했다. 연출을 공부하면서 내가 설명하고 싶은,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을 보여주기엔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춤, 연기, 노래 등을 연습하며 계속 연구했다. 그러다 친구가 ‘타잔’ 오디션을 보자고 했고 농담처럼 신청했다가 ‘제인’역으로 파이널까지 갔다. 결국 ‘제인’ 역은 못 따냈지만 연출가와 연이 닿아 ‘하이스쿨 뮤지컬’의 ‘캐시’역을 맡게 됐다. 그러다 ‘미스사이공’도 하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계속 예술가의 길을 가고픈 전나영은 “살아있는 것들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주, 자연, 사람 그리고 평화를 중시한다. 어떻게 보면 큰일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진실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힘든 사람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미소로 대해주면 상대방의 삶도 변화되지 않을까. 그런 진심어린 마음을 갖기 위해선 내가 먼저 건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한국에 머물 계획인 그는 한국 문화를 최대한 느끼고 가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물론 부모님과 살며 한국 문화를 따랐지만 문 밖을 나서면 전혀 다른 문화였다. 그는 “밖으로 나가도 안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싶었다”라며 “한국에서 혼자 연구하고 느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어렸을 적 영화 ‘서편제’를 보곤 판소리에 큰 감명을 받아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서편제’를 보고 4세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한국적인 한이 배어서 한국에 오고 싶고 한국무대에 서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젠 차분하게 한국을 배워나가야지.”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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