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강상원.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느림보 군단’ 한화서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로 주목
“한화선수 꿈 이뤘지만 롤 모델 이용규 선배처럼!”
“정근우 20대 때 감각 아닌가 싶다.”
한화 고졸 신인 강상원(19)이 폭풍의 질주로 시범경기 초반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역주는 느리기로 소문난 한화에서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한화 김성근 감독도 “여기(한화)에 똥차만 있는데, 베이스러닝 쪽으로 스페셜리스트 아니냐”며 신무기의 등장을 반겼다.
천안북일고 출신 외야수 강상원은 2016신인드래프트 2차지명회의에서 마지막 10라운드(전체 99번)에 지명돼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꼴찌에서 2번째로 호명된 선수였다. 키 172㎝에 몸무게 64㎏. 올 시즌 KBO리그 최경량 선수로 등록될 만큼 체격이 왜소하다. 지명순위와 체격만 놓고 보면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그는 ‘빠른 발’이라는 주무기를 앞세워 자신에 앞서 지명된 선수들보다 먼저 1군 무대에 데뷔할 가능성을 키워나가고 있다.
● 폭풍의 질주…강상원이 누구냐
강상원은 10일 대전 두산전에서 단 한 차례 주어진 기회에서 폭풍의 질주를 펼치며 야구팬들에게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7회말 이성열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김성근 감독은 강상원을 대주자로 투입했다. 등번호 110번. 세 자릿수 등번호라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의 플레이는 등번호보다 더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현상 타석 때 볼카운트 1B-2S서 4구째 볼이 들어오는 순간 2루를 훔쳤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더 놀라운 장면은 뒤이어 벌어졌다. 주현상의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 때 태그업으로 3루로 내달렸다. 두산 중견수 조수행의 송구가 날아들었지만, 슬라이딩을 하며 3루에 살았다. 그 순간 두산 3루수 류지혁이 공과 주자가 겹치는 바람에 공을 옆으로 흘렸다.
그러자 강상원은 곧바로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나더니 홈까지 질주했다. 백업수비를 한 투수 진야곱이 공을 잡아 홈으로 던졌지만, 바람처럼 달려간 강상원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먼저 홈플레이트를 손으로 찍었다. 마치 스켈레톤 선수가 얼음판 위를 미끄러져 들어가듯 그는 홈플레이트를 쓸고 지나갔다. 팬들은 당장 “강상원이 누구냐”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 한화 스프링캠프 참가한 유일한 신인
늦게 지명됐지만, 강상원은 한화 신인 야수 중 유일하게 일본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그만큼 그의 주력은 김성근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 감독은 “오키나와 캠프에서도 연습경기 때 계속 대주자로 내보내면서 스타트 타이밍 등을 스스로 익히게 했다”고 말했다.
한화는 지난해 팀도루 80개로 10개 구단 중 꼴찌였다. 테이블세터인 이용규(28도루)와 정근우(21도루)를 제외하면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주자로 나가면 상대가 압박감을 느낄 만한 선수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상원은 ‘느림보 군단’ 한화에 새로운 옵션 하나가 될 만하다. 실제로 강상원은 9일 대전 넥센전에서도 8회 대주자로 시범경기 데뷔전을 치렀는데, 곧바로 도루를 성공했다. 2경기에서 2차례 대주자로 나가 2차례 모두 도루를 성공해 100%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김 감독은 강상원의 주루플레이에 대해 “정근우 20대 때 감각이 아닌가 싶다”고 말할 만큼 높이 평가했다.
한화 강상원.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어릴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만큼은 늘 1등
열아홉 살의 풋풋한 신인. 강상원은 11일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야구를 시작한 뒤로 처음으로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어제(10일) 경기가 끝난 뒤 핸드폰을 봤는데 문자들이 많이 오고, 팬들한테도 문자가 많이 왔다. 기사도 나오고 신기했다. 부모님이 많이 좋아했다”며 순박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발이 빨랐다. 온양온천초등학교 5학년 때 육상부에서 야구부 감독의 눈에 들어 야구선수가 된 그는 “장거리는 잘 달리지 못하는데, 단거리는 자신 있었다. 야구를 하고 나서 한 베이스나 두 베이스 가는 건 거의 1등을 안 놓쳤다”고 설명했다.
주력도 좋지만, 순발력도 탁월하고, 과감성도 돋보인다. 신인으로서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법한데 과감한 주루플레이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그린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코치님이 ‘뛰다가 죽어도 된다’고 해서 과감하게 달리고 있다. 고등학교 때도 주루플레이는 공격적으로 했다”고 소개한 뒤 “그래도 고등학교 때랑 프로는 도루 타이밍을 잡는 데 있어서 많이 다른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투수가 다리를 들면 뛰어도 됐는데, 프로는 투수 습관이나 포수 앉는 위치까지 파악해서 달려야 한다. 오키나와에서 코치님한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 한화 선수 꿈 이뤘지만, 이제 이용규 선배가 목표
프로에 들어온 뒤 처음 경험해본 스프링캠프 훈련. 게다가 훈련이 힘들기로 소문난 한화였다. 강상원은 “솔직히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님 훈련이 힘들다는 건 소문으로 들었지만 정말 힘들었다”며 “도망가고 싶고, 울고 싶고, 엄마 보고 싶고 그랬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훈련을 견뎌냈더니 체력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고, 주루플레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양온천초~온양중~천안북일고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한화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꿈을 이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목표와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1차 꿈은 이뤘지만 이제 1군 선수가 목표다. 올해 대주자로 나간다면 도루 20~30개 정도 하고 싶다. 주루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주전이 되려면 타격과 수비 모두 더 배워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이용규 선배가 롤 모델이었다. 나중에 이용규 선배처럼 국가대표 테이블세터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2차지명 10라운드 99번째 지명 선수. 그리고 KBO리그 최경량선수. 여기에 등번호 110번.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프로필이지만, 루키 강상원은 시범경기에서 ‘느림보 군단’ 한화의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늦게 지명됐다고, 희망의 출발점까지 늦는 것은 아니다.
대전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