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의 ‘물건’ 정동현 “느려도 제압한다!”

입력 2016-06-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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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정동현.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KIA에서 양현종 이후 9년 만에 고졸 루키의 선발승이 나왔다. 프로 입단 후 2군에서도 선발등판이 없던 신인 정동현(19)이 데뷔 첫 선발등판에서 일을 냈다. KIA 투수 중 데뷔 첫 선발등판에서 승리를 따낸 건 2002년 김진우 이후 14년 만이다. 새로운 ‘물건’이 나왔다.

정동현은 10일 광주 삼성전에 선발등판해 5.2이닝 5안타 무실점하며 4-0 승리를 이끌고 데뷔 첫 승을 올렸다. 투구수는 80개. 삼성 타선을 5안타로 틀어막았고 볼넷은 단 1개 허용했다. 탈삼진은 1개였다.

KIA에서 고졸 신인투수의 선발승은 2007년 9월 29일 대전 한화전 양현종(5이닝 1실점) 이후 9년 만이었다. 또한 데뷔 첫 선발등판에서 승리를 올린 것은 2002년 4월 9일 무등 현대전 김진우(6이닝 2실점 1자책) 이후 KIA 투수로는 처음이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2016신인드래프트서 2차 3라운드 전체 23순위로 KIA에 지명된 정동현은 이날 고척 넥센전에 선발 등판한 kt 정대현의 6살 터울 동생이다. 형과 같은 왼손잡이다. 올 시즌 kt 박세웅과 롯데 박세진이 같은 경기에 등판해 KBO리그 역사상 첫 형제투수 맞대결이 펼쳐졌으나, 선발 박세웅과 달리 박세진은 중간계투로 나섰다. 같은 날 형제가 선발등판한 건 정대현-동현 형제가 KBO리그 사상 처음이었다. 정대현도 6이닝 3실점(2자책)으로 호투했으나, 불펜진 난조로 승리하지 못하며 동반 승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 130㎞대 구속+싸움닭+포피치 투수 “내가 정동현이다!”

조계현 수석코치는 경기 전 정동현에 대해 “배짱이 있다. 마운드 위에서 싸울 줄 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싸움닭’ 기질은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타고나는 부분이 크다. 산전수전 다 겪은 코칭스태프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정동현은 2군에선 14경기 모두 구원등판해 1승1패 2홀드 3세이브 방어율 2.16을 기록했고, 데뷔 첫 등판이었던 2일 잠실 LG전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3이닝 무실점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직구 구속은 130㎞대였지만, 정동현은 씩씩했다. 건장한 체구(185㎝·99㎏)와 달리 스피드가 나오지 않지만,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구사하는 ‘포피치’ 투수의 장점을 발휘했다.

‘퓨처스 유희관’이라는 별명답게 도망가지 않는 피칭과 훌륭한 컨트롤을 선보였다. 선발등판이 처음인 투수라곤 믿기지 않았다. 1회초 2사 후 이승엽에게 2루타를 맞았음에도 4번타자 최형우에게 슬로커브를 연거푸 던지는 배짱을 보이며 내야 뜬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2회에는 선두타자 박한이에게 중전안타를 맞았음에도 삼진과 범타로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3회 1사 후 배영섭과 박해민에게 연속안타를 맞았으나, 삼성 타선의 중심인 이승엽과 최형우를 연달아 외야 뜬공으로 잡아냈다.

4회엔 처음으로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4회 1사 후 김상수에게 2루타를 허용한 뒤에도 테이블세터 배영섭과 박해민을 외야 뜬공으로 요리했다. 6회 1사 후 최형우에게 내준 볼넷이 첫 볼넷 허용. 정동현은 다음 타자 박한이를 중견수 뜬공으로 아웃시키고 임무를 마쳤다. 상대가 오른손 대타 김태완을 기용하자 마찬가지로 고졸 루키인 입단 동기 우완 전상현(20)과 교체됐다.

전상현도 2이닝 무실점하며 제 몫을 다했다. KIA 벤치는 정동현에 이어 전상현까지 루키들이 마운드를 내려올 때마다 한데 모여 축하세례를 건넸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배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3이닝 생각만 했던 첫 선발, 형과 맞대결하고 싶다”

경기 후 김기태 감독은 “정동현, 전상현 두 신인투수가 역투를 펼치며 팀에 큰 힘이 돼줬다”며 코치진과 악수를 나눴다. 이대진 투수코치 역시 “다양한 구종, 공격적인 컨트롤 등에서 가능성을 봤는데 첫 등판부터 기대 이상의 호투를 해줬다”며 기뻐했다.

“올해 선발등판은 생각도 못했다”던 정동현도 활짝 웃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선배 양현종이 준 꽃다발을 품에 안은 정동현은 “난 오른손잡이다. 어렸을 때 왼손잡이인 형이 쓰던 야구 장비를 갖고 야구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야구할 땐 왼손으로 던지고 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코치님이나 선배들이나 전부 5이닝 이상 던진다 생각하지 말고 3이닝만 던진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주셨다. 그럼 5회, 6회로 편하게 지나간다는 말이었다. 나도 잠실에서 3이닝 던졌던 걸 생각했다”며 조언이 힘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난 볼은 느리지만, 타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투수다. 포수 (이)홍구형이 계속 볼에 힘이 있으니 몰아붙이자고 했다. 처음 야구할 때부터 볼넷을 주는 걸 싫어했다. 차라리 맞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처음 경험하는 1군. 정동현은 “응원에 소름이 돋는다”며 분위기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는 “형과 맞대결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다”며 1군에서 좋은 모습을 이어가 형과 같은 마운드에 서는 그 순간을 그렸다.

6월 들어 KIA는 5연패에 빠지며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러나 9일 대전 한화전 12-1 대승으로 연패를 끊은 뒤, 10일에는 신인투수들의 ‘깜짝 활약’에 힘입어 연승을 달렸다. KIA에겐 단순한 승리가 아닌, ‘미래’가 담긴 값진 승리였다.

광주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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