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5분 인생특강’의 위안 속에 ‘5분 드라마’ 쓴 이종호

입력 2016-06-18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북현대 이종호. 스포츠동아DB

15일 수원삼성전 종료 직전 ‘극장골’…리그 1호골
전남서 전북으로 옮겨온 뒤 교체멤버로 마음고생
베스트셀러 ‘5분 인생특강’으로 위안 얻고 반전


고통스러웠다. 답답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겨울이적시장에서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특유의 환한 웃음도 어느 순간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였다. 어쩌면 최악이라고 할 만한 환경에 주눅 들고 좌절하는 대신, 주변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기회로 바꾸기로 했다. “내가 변해야 살 수 있었다. (어려웠던 상황은) 남이 아닌, 내가 못했기에 빚어진 일이다.”

1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삼성과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14라운드 홈경기. 기회가 왔고 놓치지 않았다. 전광판 스코어가 1-1을 알리던 후반 종료 직전, 기가 막힌 ‘극장골’을 터뜨렸다. 전북현대 이종호(24)는 로페즈가 띄운 오른쪽 크로스를 논스톱 발리킥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정규리그 6경기만의 1호골(1도움). 곧바로 종료 휘슬이 울렸고, 전북은 개막 이후 14경기 연속무패행진(8승6무·승점 30) 속에 단독 선두를 지켜냈다. “추가시간 결승골을 넣은 기억은 프로 데뷔 후 처음인 것 같다. 얼떨떨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종호는 ‘골목대장’이었다. 그의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와 (전남에 머물던) 지난해까지의 팀 내 입지는 전혀 달랐다. 경기 때면 당연히 선발출격. 그러나 전북에선 달랐다. 교체선수였다. 익숙할 수 없었다. 서글픔도 느꼈다. 교체 투입되면 호흡도 늦게 터졌고, 어렵사리 페이스를 찾더라도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이날 수원전에서도 후반 22분 교체 투입됐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마인드 컨트롤이 훨씬 중요했다. 이적 후 아랍에미리트(UAE) 동계전지훈련에 앞서 구입해놓고 잠시 잊고 있던 에릭 카플란 박사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5분 인생특강-나를 깨우는 힘’을 다시 들췄다.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걱정을 극복하며 ▲고민이 커지기 전 떨치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여러 글귀들을 읽고 또 읽었다. “버릇처럼 살피던 온라인 축구영상을 멀리 했다. 개인훈련시간은 늘리고, 다양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따라 꾸준히 몸을 만들어왔지만, 되도록 축구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책이 마음을 다독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5분’의 힘은 실로 컸다. “이 경기가 올 시즌 클래식 농사의 분수령이다. 정말 중요하다. 꼭 이기자”던 최강희 전북 감독의 당부가 현실이 됐다. 대기심이 추가시간 5분을 알린 뒤 수원의 골망이 출렁인 순간, 시계는 정확히 4분27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형님들에게도 감사하다고 했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툭툭 던져주는 고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됐다. 베테랑 이동국(37)은 “보란 듯이 이겨내라. 그게 바로 너다운 모습”이라고 격려해줬고, 올 겨울 울산현대를 떠나 함께 전북 유니폼을 입은 선배 김신욱(28)은 “급히 생각하지 말자.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자”며 다독였다.

최후의 5분에 작지만 큰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이종호는 이제 한시름을 놓았다. 부담도 한결 줄었다. ‘전북 맨’이기에 당연히 더 잘해야 하고, 뭔가 해내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감에서도 한걸음 벗어났다. 다만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갈 길이 멀다. 아시아 정상과 클래식 평정, FA컵을 다 잡으려면 지금에 만족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다행히 다시 길이 보이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