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작은 형’ 전석호,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은 이유

입력 2016-11-22 1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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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은 2년이 흐른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수작이다. 대한민국 청춘의 애환과 직장인의 현실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2014년 겨울 방송 당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덕분에 ‘미생’에 출연한 배우들도 ‘미생 신드롬’ 수혜의 대상이 됐다. 이성민 임시완 강소라 강하늘 변요한 등의 주연진뿐 아니라 스치는 단역까지도 재조명받았다.

배우 전석호도 ‘미생’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린 수혜자 중 하나다. 어쩌면 전석호라는 본인의 이름보다 ‘미생’ 극 중 역할인 ‘하대리’가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강소라와 직속 선후배 관계를 연기한 전석호는 그의 표정에서 따온 이모티콘 ‘ㅡAㅡ’와 함께 큰 사랑을 받았다.

‘미생’은 충무로와 대학로를 지켜온 전석호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첫 술에 배가 부르고도 넘쳤다. 단숨에 유명세를 탔으니 대중적으로 더 큰 도약을 노려볼 만 했다. 하지만 전석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작은 영화로 눈길을 돌렸고, 무대로 회귀했다. 크랭크업 2년여 만에 11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작은 형’(심광진 감독)은 전석호가 ‘미생’을 마칠 무렵 선택한 작품이다.


Q. 2년 전쯤 촬영한 ‘작은 형’이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A. 감독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아이를 낳고 책임지지 않았다가 출생 신고를 늦게 하는 것 같같아요. 다행이에요. 우리끼리는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감독인 광진이 형을 비롯해 제작진도 배우도 대부분 학교 선후배들이에요. 알게 모르게 참여해준 스태프도 많죠. 이 작품을 통해 입봉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라도 꼭 개봉했으면 했어요.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식이 생기는 거잖아요.


Q. 그런 스태프들의 간절함을 직접 경험한 시절이 있었나요.

A. 사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미디어에 나온 지는 얼마 안 됐는데도 많은 분이 알아봐주는데다 주위에 노력해주는 사람들도 많죠. 공연을 할 때는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배우 수만큼의 관객 앞에서 공연할 때도 있었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Q. ‘미생’을 끝나고 가장 주목받을 때 ‘작은 형’을 선택했어요.

A. 주위에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면서 ‘예능에도 나가고 드라마도 많이 하라’고 하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왜 숨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생에 한번만 물이 들어올까 싶어요. 무엇보다 당시에 저의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많은 대중이 보는 드라마에 나가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았고요. 그래서 ‘미생’이 끝나고 바로 공연을 하고 ‘작은 형’도 찍었어요. 해치우는 연기가 아니라 고민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거든요. 역할과 작품의 스케일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었어요.



Q. ‘작은 형’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A. 처음부터 제가 캐스팅된 건 아니었어요. 오지랖이긴 한데 제 작품이 아니어도 네 것 내 것 나누지 않고 작품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안 하면 아예 안 하지 대충은 못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광진이 형과 오랜 시간 ‘작은 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지만 프리 프로덕션(촬영 전 준비 단계)가 길었죠. 제가 출연하게 된 후 광진이 형이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해줬어요. 대단한 능력인 것 같아요.

사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몇가지 안 돼요. 시나리오를 보기도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사람도 못지않게 중요하죠. 저는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 사람이 시나리오를 쓰면 작품에서도, 그 사람 주변에서도 사람 냄새가 나더라고요. 몽상가 같지만 그걸 믿고 있어요.

‘작은 형’이 단순히 형제와 가족의 이야기였다면 출연 안 했을 거예요.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보완해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린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관객들이 ‘작은 형’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Q. 보기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욱 불편하게 표현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불편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연기하는 저도 편하지 않거든요. 입금 되니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슬픈 사람과 함께 공감할 때 괜찮은 척 힘을 주면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나도 슬프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편하지만은 않고, 우리가 보지 못할 뿐 불편한 사람이 주변에 항상 존재하죠.

‘작은 형’ 속 동현은 불편한 사람들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렇지만 동현은 그 사실을 모르죠. 저는 관객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영화를 보면서 ‘뜨끔’했고 불편했거든요.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업해나가면 관객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연기를 ‘그냥’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에요.


Q. 배우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A. 억울한 사람들, 사회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작은 형’의 개봉 소식을 듣고 제가 왜 연기를 시작했는지 생각해봤어요. 첫 시작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어요. 이 사회는 억울한 사람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듣지 않거든요. 그래도 제가 작품을 통해 전하면 1명이 들을 이야기를 100명이 듣게 되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았어요.

지난 주말에도 억울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분한 것도 많고 말 못하는 것도 많은데 달콤한 이야기만 한다면 그게 더 불편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심오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가랑비에 젖듯 슥 던지는 거죠. 개인적으로 그런 점이 묻어나는 작품을 좋아해요. ‘미생’ ‘작은 형’ ‘굿 와이프’와 작은 공연들, 단편 영화들도 그런 지점이 있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됩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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