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남들은 쉽게 던진 말이 비수가 되고 상처가 되는지 잘 모른다. 어느날 한 선배가 나에게 ‘명민아. 그런데 본좌가 무슨 뜻이냐?’라고 하더라. 내가 직접 ‘명본좌’를 설명해야 하니까 부끄러웠다.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더라.”
배우 본인은 극찬을 담은 수식어 ‘명본좌’를 불편해하지만 관계자와 관객들의 시선은 다르다. 높이 평가받을 만큼 김명민의 연기력과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 배우로서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냉정한 김명민은 한 작품도 허투루 임하지 않았다. 과거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를 연기하면서 3개월 동안 20kg 이상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 ‘하루’ 역시 마찬가지. ‘하루’는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 준영이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을 만나 그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극 중 준영을 연기한 김명민은 “지옥 같은 현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치열하게 촬영했다. 준영이 딸의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폭행하는 몰입도를 보였다.
“맨주먹으로 바위 치던, 단역 배우 시절의 나는 ‘설정왕’이었다. 한번은 안경을 무기로 삼고 현장에 갔는데 그 안경을 잃어버렸다. 안경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에게 너무 화가 나더라. 분에 못이겨 촬영장 화장실에서 내 온몸을 막 때렸다. 치고 또 쳐도 성이 안 풀리더라. ‘하루’의 준영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딸을 구했을 텐데 싶지 않았을까. 내 감정대로 연기한 즉흥적인 신이었는데 감독님이 잘 잡아주셔서 다행히 한 번에 찍었다.”
작품 밖에서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할까. 김명민은 “가혹까지는 아니고 나태해지는 게 싫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일상 속 그도 썩 여유롭진 않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낮잠도 안 잘 정도라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닐까.
“인생의 3분의1을 누워서 보낸다는 게 속상하지 않나. 남들보다 좀 덜 자면 뿌듯하다. 깨어있다고 해서 딱히 하는 것은 없지만 누워 있는 시간이 아쉽다. 일이 없으면 밤 11시에 자는데 새벽 4-5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그 시간에 생각을 하거나 계획을 짠다.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은 하루 6시간 안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김명민의 냉정한 시선은 ‘스스로’에게만 향한다. 그는 타인에게 같은 열정과 태도를 강요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소신은 지킨다. 상대와의 호흡을 무시하고 자기 연기만 챙기거나 흥행만 좇는 배우들을 언급하면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배우들은 때때로 김명민이 ‘타산지석’하는 밑거름을 마련하기도 한다.
“배우가 돈과 흥행을 따라가면 안 된다. 오래 걸리고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다 같이 오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살다 보면 가끔 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배우들도 많다. 본인 스스로가 C급인데 A급인 것처럼 행동하는 배우들을 많이 봤다. 그들을 보면서 ‘정말 그러면 안 된다’고 더 배우게 된다. 내가 안일해지고 나태해질 때 그런 연예인병과 거지근성 걸린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상쇄했다.”
그러면서 김명민은 “박수칠 때 떠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배우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같은 동료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목표”라면서도 “연기를 오래할 자신이 없다.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 대중이 원하는 연기를 못하게 됐을 때, 필요 없는 배우가 됐을 때 떠날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명민의 열연이 녹아든 ‘하루’는 6월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