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KS 출장, 살아있는 역사’, 임창용이 되돌아본 1997년 우승의 추억

입력 2017-10-30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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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임창용. 스포츠동아DB

“그땐 선배들만 믿고 따랐죠.”

추억은 인생의 아름다운 장면을 스스로 곱씹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흐르는 세월 속에 기억은 희미해지고, 몇몇 모습들은 기억의 저편 너머로 사라진다.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누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존재한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프로선수들이라면 그 명장면의 주제는 꽤나 명확할 것이다. 바로 평생의 염원인 ‘우승’이다.

KIA 임창용(41)은 한국시리즈(KS) 우승을 5번이나 경험한 베테랑 투수다. 해태와 삼성시절을 포함해 그가 선수로서 남긴 명장면은 그야말로 차고 흘러넘친다.

그러나 유독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우승의 기억이 있다. 바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1997년 KS의 추억이다. 그는 당시 팀의 마무리투수로 3경기에 나서 3세이브 방어율 ‘0’의 성적으로 생애 두 번째 우승을 경험했다.

임창용은 이후 여러 길을 돌고 돌아 2016년 다시 고향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미 마흔을 넘긴 나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겠느냐’라는 시선으로 그의 복귀를 지켜봤다. 그러나 임창용에게는 불혹을 넘겨서도 해내야 할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신을 다시 받아준 타이거즈에 한 번 더 KS 우승컵을 안기는 일이었다. 그는 까마득한 후배들과 불펜에서 투혼을 불사르며 KIA를 KS 무대로 이끌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수도 있는 기회.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KS를 준비했다.

두산과 긴장감 넘치는 잠실 혈투를 펼치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임창용은 “긴장이 왜 안 되겠나. 나도 떨린다. 그러나 지금 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또 불펜에서 아무리 좋은 공을 던져도 소용없다. 마운드 위에 올라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결국 관건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1997년에 우승할 당시 나는 거의 막내급이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마운드에 올라갔었는데, 그저 선배들만 믿고 공을 던졌다. 조계현, 이대진, 이종범 등 이름만 들어도 믿음직한 선배들이 즐비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임창용이 시리즈 내내 우직한 자세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는 KIA의 올 KS 출장선수들 중 최고참이다. 20년 전 선배들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자신이 하고 있다. 자신을 믿고 있을 후배들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는 29일 두산과 KS 4차전에 팀 5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KS 최고령 출장 신기록(41세 4개월 25일)을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관록미를 보이며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고, KIA는 두산을 5-1로 꺾었다. 1997년과 마찬가지로 그의 2017년 KS 방어율은 4차전까지 여전히 ‘0’이다.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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