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기자의 보고르 리포트] 금성홍기·태극기 그리고 박항서

입력 2018-08-3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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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베트남 남자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왼쪽)과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베트남 남자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왼쪽)과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9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치피농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 베트남의 국가 진군가가 울려 퍼졌다.

김학범 감독과 한국 코칭스태프는 어깨동무를 하고 정면을 응시했다. 상대국에 대한 예의를 이렇게 갖췄다. 반면 노란색 셔츠를 입은 베트남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응원단이 펼친 대형 금성홍기를 향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경의를 표했다. 잠시 후 순서에 따라 애국가가 울렸다. 박 감독은 곧장 한국 응원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전과 똑같이 대형 태극기를 향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바로 곁에 있던 베트남 이영진 코치도 박 감독과 모든 것이 같았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남자축구 4강전이 열린 파칸사리 스타디움에는 약 1500여 명의 베트남 응원단이 모였다. 한국은 이보다 많은 약 2000여 명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경기 시작 전 스타디움 밖의 열기는 한국 팬들에 비해 베트남 팬들의 그것이 더 뜨거웠다. 금성홍기가 새겨진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형 월드컵 트로피도 등장했고 커다란 북과 나팔이 동원됐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의 총괄 사령탑에 오른 뒤 선전을 이어가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AG에서도 베트남을 사상 첫 4강으로 이끌었다. 4강전 상대였지만 현지에서 만난 베트남 축구 팬들은 한국 취재진을 무척 반겼다. 한 중년 남성 팬은 흥겹게 나팔을 불다가 한국 취재진을 보자 먼저 다가와 “박항서!”를 외치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한국과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1992년 수교를 맺었고, 수년 전부터 한국 가수와 한국 드라마, 한국 전자제품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내에서 인기가 높지만 친구가 되기까지는 아직 서먹했다.

그러나 박항서 감독은 축구를 통해 한국에 대한 베트남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고 있다. ‘박항서 매직’은 베트남 축구를 크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더 위대한 마법은 축구를 넘어 한국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열린 마음에 있지 않을까.

보고르(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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