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주호민 “시민독재” 주장→기안84 실드쳤는데 맥락 미스

입력 2020-09-18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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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기안84 옹호 발언 논란
“재미있으니까 더 팬다”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실드→맥락 미스
웹툰 작가 주호민이 독자 검열에 불쾌감을 드러내 논란이다.

주호민은 18일 새벽 트위치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웹툰 독자 의견을 ‘시민 독재’라고 정의했다.


주호민은 “지금 웹툰 검열이 진짜 심해졌다. 그런데 옛날에는 국가가 검열을 했는데 지금은 시민이, 독자가 한다.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건 굉장히 큰 문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고 주장했다.

주호민은 “이런 생각들,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생각들을 더 넓히는 방법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작품을 만났을 때 그것을 미개하다고 규정하고 계몽하려고 한다. 그러면 확장을 할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맞는 이유가 네가 미개해서가 아니고 내 생각과 같이 하면 이런 것들이 좋아진다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런 걸 보여준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냥 ‘너는 미개한 놈이야’라고 항상 이걸로만 가니까 오히려 더 반발심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아마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거다. 지금은 시민이 시민을 검열하기 때문에 뭘 할 수가 없다. 힘겨운 시기에 만화를 그리는 거다”며 “만약 (시민 검열에 걸려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사과하면, 또 진정성이 없다고 한다. 그냥 죽이는 거다. 그냥 재밌으니까 더 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웹툰 ‘복학왕’으로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기안84를 옹호하기 위한 주호민 개인 생각이다.

앞서 기안84는 지난달 초 재연재를 시작한 ‘복학왕’으로 인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무능한 여주인공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과정을 다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성 독자들과 팬들에게 비판받았다.

이에 기안84는 공식 사과했다. 기안84는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유머 있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수달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을 식당 의자를 젖히고 봉지은이 물에 떠 있는 수달을 겹쳐지게 표현해보고자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독자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도 추가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했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시는 만큼, 원고 내 크고 작은 표현에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일각에서는 기안84의 웹툰 활동을 중단한 것을 요구했다. 또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도 하차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사단법인 웹툰 협회는 주호민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펼쳤다. 웹툰 협회는 “논란 중인 기안84 작품 자체의 가치평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여성혐오, 성소수자와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하와 조롱의 혐의에 바탕한 문제제기와 비판의 함의는 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통감한다”면서도 “기안84와 그의 작품을 두고 독자들 비판과 지적, 단순 주장과 견해 이상의 연재중단과 작가퇴출을 강제하려는 물리적 위력행사는 단호히 반대하고 배격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재 중단이나 작가 퇴출 주장도 댓글일 때는 하나의 의미 있는 견해로 이해하고 수긍한다. 작품의 순행과 퇴출은 그만한 가치 평가에 연동해 저절로 결정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회적 어젠다나 특정 정파성과 주의의 관점에서 여느 작가의 창작과 작품을 비판적 논쟁의 영역을 벗어나 물리적으로 강제하려는 행위는 조지오웰의 1984가 경계했던 빅브라더 사회, 전체주의로 해석하는 파시스트들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또한,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포괄하는 모든 선진국이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기본 스탠스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일명 ‘만화계성폭력대책위’의 만화계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웹툰 협회는 “성평등이라는 사회적 어젠다를 명분으로 웹툰 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을 제약하고 나아가 작가의 부정적 평가와 탄압의 근거로 기능할 수도 있는 성평등을 위한 작품제작 주의점의 권고한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며 “여성혐오와 성폭력의 핵심 인과는 ‘위력과 위계’다. 작가의 소양 부족에 따른 부적절한 표현에 지적과 비판을 넘어 실제 연재중단과 작가 퇴출을 강제하려는 물리적 행위는 사회적 어젠다의 당위가 작가에게 가하는 엄청난 위력이다. 비판과 지적, 논쟁의 영역과 위력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소위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감정적 위력행사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웹툰을 포함한 대중예술 전 영역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훼손하려는 일체의 부조리한 시도와 위력은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고 했다.

언뜻 주호민과 웹툰 협회 주장에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부분과 기안84를 둘러싼 논란은 맥락과 결이 다르다. 전체주의에 빠진 일부가 그를 공격해 발생한 논란이기도 하지만, 기안84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면서 생기는 부분도 더 크다. 기안84는 이제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셀럽에 가깝다. 방송을 통해 더 많은 팬이 생겼다.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나 혼자 산다’를 보고 기안84에 환상을 가질 남성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기존 기안84 팬들이 그가 그린 웹툰에 반응해 그를 공격하는 가능성이 높다. 세상 제일 무섭다는 일이 탈덕(팬들이 등을 돌리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내가 덕질했으니 내가 까’라고 하는데 누가 이를 말리겠는가. 주호민과 웹툰 협회는 맥락을 한참 잘못 짚었다. 어차피 기안84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의 싸움이다. 제3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소신 발언이 논란만 키운다. 이번에도 결국 모든 화살은 기안84로 향한다. 어차피 일을 키운 장본인이 기안84이니 수습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몫이다.
한편 창작의 어려움과 작가들 고충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응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창작 활동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기에 분명 창작자를 향한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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