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 벤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여론이 들끓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6일 선수단 귀국에 앞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사죄 메시지를 띄우기에 이르렀다. 정 회장은 “벤투 감독에게만 비난이 쏠리는 건 온당치 않다. 완벽히 지원하지 못한 협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밝혔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방향이 잘못됐다. 협회는 벤투 감독을 철저히 관리했어야 했다. 정 회장의 메시지에 등장한 ‘구단과 지도자 등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협회가 아니라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K리그 현장을 돌아다녔다. 포르투갈 코치들도, 국내 코치들도 K리그와 소통하지 않았다. 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홍명보 울산 감독이 “정상적 상태가 아니다. 자신감도 떨어졌고, 경기력도 안 좋다”던 왼쪽 풀백 홍철을 굳이 뽑았고, 보란 듯 풀타임을 뛰게 한 벤투 감독을 보며 축구인들은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벤투 감독은 울산에서만 총 7명을 뽑았다. 엄청난 정성을 쏟아도 부족할 한·일전을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로 삼으려 한 게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뚝심이 지나치면 고집, 나아가 아집이 된다.
물론 6월 국내에서 치러질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잔여 4경기를 앞둔 마지막 소집이자 점검 기회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벤투호’는 항상 뽑는 선수들만 다시 택했다. 그나마 홍철과 포지션이 같은 박주호(수원FC)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역시 컨디션이 홍철 못지않게 좋지 않았다.
팀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최근 경기를 뛰지 않은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 소속선수들을 전부 차출한 것도 의문이다. 베테랑 수비수 김영권은 기대이하였고, 주세종은 코로나19 재확진으로 합류할 수 없었다. 차라리 벤투 감독이 “가장 경기력이 좋은 선수를 뽑는다”고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나을 뻔했다.
전술적으로도 실패했다. 먼 길을 날아와 지친 이강인(발렌시아)을 낯선 위치(제로톱)에 세웠고, 플랜B도 내놓지 못했다. 평소처럼 보수적 선발을 했다면 선수들에 가장 익숙한 전략을 세웠어야 했는데, 벤투 감독은 생뚱맞은 파격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삶은 계속된다. 협회와 대표팀이 원정 A매치에 나선 것은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수많은 난맥상과 문제점들을 되짚지 않으면 고통은 계속될 뿐이다. 귀국한 선수들은 방역 지침에 따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코호트 격리를 하고 있다. 4월 2일 암울한 시간이 끝나는 대로 벤투 감독이 직접 해명하는 자리가 필요해 보인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