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의 기다림에 종지부 찍은 홍명보, 안팎의 적과 치열히 싸웠다 [울산 V3]

입력 2022-10-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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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는 없었다. K리그1(1부) 울산 현대가 기어이 오랜 한풀이에 성공했다.

울산은 16일 춘천송암스포츠타운에서 열린 강원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2’ 3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2-1로 이겨 2위 전북 현대를 확실히 밀어내며 1996, 2005년에 이어 통산 3번째로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했다.

시즌 내내 구단과 선수단, 팬들이 완벽한 3박자를 이룬 가운데 ‘부임 2년차’ 홍명보 감독(53) 역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팀 안팎을 정비하고 정리하면서 선수단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인 끝에 최고의 결실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울산 지휘봉을 잡자마자 홍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선수 파악이었다. 단순한 면담이 아니었다. MBTI 검사를 통해 주축 상당수가 내향적 성격임을 확인했다. 각자 역할은 잘해도 희생정신이나 협동심은 조금 부족하다는 내용도 함께 확인했다.

항상 개인이 아닌 팀에 집중해온 홍 감독은 “선수들이 본인의 몫 이상을 해내야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다”는 지론에 입각해 고강도 체질개선에 나섰다. 이적시장을 통한 전력 재정비도 이를 토대로 이뤄졌다.
물론 없었던 힘이 하루아침에 쌓일 리 만무했다. ‘현대가 라이벌’ 전북도 2000년대 중후반부터 내실을 다진 끝에 지금의 ‘절대왕조’를 열었다. 지난 시즌도 무관으로 마쳤으나, 홍 감독은 담담했다. 그 대신 “우리는 훨씬 강해져 돌아올 것”이라는 굳은 약속을 남겼다.

정말 그랬다. 울산은 시즌 초반부터 파죽지세였다. 다만 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고비마다 좌절을 안긴 ‘전북 트라우마’는 꼭 지워야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위기가 닥쳤다. 정규리그 전적 1승1무1패로 팽팽한 가운데 5일 FA컵 4강전에서 연장혈투 끝에 또다시 1-2로 무릎을 꿇었다.

여유는 사라지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홍 감독은 가능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최대 목표인 리그 우승을 위해 불쾌한 감정은 빨리 털어내야 했다. 그렇게 8일 올 시즌 마지막 ‘현대가 더비’를 앞두고 선수들이 스스로 추스르도록 기다렸고, 대역전승(2-1)을 연출했다.


이렇듯 홍 감독은 매 순간 제자들을 믿었다. “프로무대를 누비고, 울산 유니폼을 입을 정도라면 실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기력, 결과가 좋지 않을수록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4월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1-1 무) 하프타임 도중 라커룸에서 물병을 발로 차며 화를 낸 순간을 제외하면 쓴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전북과 FA컵 준결승에서 퇴장 당한 레오나르도를 향한 “바보 같은 행동” 정도가 가장 높은 수위의 발언이었다. 자신을 늘 신뢰하는 수장을 위해 선수들은 전력을 다해 춤을 췄다. ‘울산 홍명보호’의 우승은 처음이지만, K리그를 집어삼킨 ‘푸른 파도’의 도전은 이제 갓 시작됐을 뿐이다.

춘천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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