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A부터 Z까지’ 완벽 통역의전으로 ‘평화’의 불씨 키우는 HWPL 봉사자들 [르포]

입력 2023-09-21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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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지 HWPL 통역의전 봉사자(오른쪽)가 자신이 담당하는 해외 인사와 함께 ‘위아원’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ㅣHWPL

‘전문 통역사 아니냐’는 오해할 정도로 노력… “바라는 것은 평화 한 가족 되는 것”
“내가 의전실장인데, 어떤 나라를 다녀도 이 정도 규모로 통역과 의전을 해주는 단체는 만나본 적이 없다. 특히나 2014년부터 이런 행사를 해 왔다는 것, 이 모든 행사를 오로지 봉사자들로 채워서 이뤄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캄보디아 승왕 텝봉 스님의 개인 고문관이자 비서를 담당하는 승왕청 소속 츠온 사브온 의전실장의 말이다.

츠온 사브온 의전실장은 지난 18일부터 열린 HWPL 9·18 평화 만국회의 제9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자 입국했다. 해당 인사의 입국 당시부터 통역 의전을 도맡은 이상희 봉사자를 비롯한 국내외 봉사자들과 몇 마디를 나누는 와중에도 손에 쥔 핸드폰 진동은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 통역의전 봉사자가 “급히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본인이 맡은 인사가 HWPL 다큐멘터리 제작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것. 구두를 신고 뛰어가는 봉사자를 따라가자 한 해외 인사가 봉사자를 향해 반갑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짧은 포옹을 나누는 모습이 친근해 보였다.

이내 그랜드하얏트 인천 이스트타워 라운지에서 미니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국인인 다큐멘터리 담당자가 질문하는 내용을 작은 수첩에 휘갈기듯 적고, 질문이 끝나면 즉시 인사에게 질문을 통역한다. 인사는 다큐멘터리 담당자를 보며 대답을 이어가지만, 통역의전 봉사자의 눈은 오로지 인사의 입을 향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도 봉사자는 두 사람의 인사말을 통역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도 다큐멘터리 담당자를 향해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나를 통해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사의 입국 전부터 기념식 내내 인사의 눈과 귀가 되기도, 때로는 입이 되기도 하는 통역의전 봉사자들. 이 봉사자는 “적어도 행사 기간에는 ‘항상 나보다 인사가 먼저’라는 각오로 봉사한다”고 했다.

봉사자에서 전문가의 면모가 물씬 느껴진다는 사실이 신기해 ‘어떻게 준비하고 일하느냐’고 묻자, 말문을 막히게 하는 유창한 대답이 돌아왔다.

“통역의전부 봉사자는 입국한 해외 인사의 어떤 질문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해요. 인사에 대해 밤새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현재 주요 이슈, 역사,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하죠. 한국에 대해 궁금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를 해당 국가 언어로 잘 전할 수 있게 미리 번역해서 외워요. 인사가 기념식 기간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통역 의전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명수빈 HWPL 통역의전 봉사자(왼쪽 네 번째)가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인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ㅣHWPL


이들에 대한 해외 인사들의 반응은 다양하고도 한결같다.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소속 인사의 통역의전을 담당하는 명수빈 봉사자는 “인사들 대부분이 우리를 ‘당연히 전문 통역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어디서 일하느냐, 내가 스카우트할 테니 나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는다”고 말했다.

필리핀 인사의 통역의전을 맡고 있는 최현지 봉사자는 “봉사 중이라고 말해도 믿기지 않는다며 ‘정말로 통역사가 아니냐’고 재차 묻는 인사도 있다”고 덧붙였다. 웃는 모습에서 뿌듯함이 묻어났다.

한 국무장관의 통역 의전을 맡은 염세린 봉사자는 “때에 따라서는 인사의 귓가에 대고 소곤소곤 통역하는 ‘위스퍼링’도 진행해야 한다. 때문에 개인 옷차림과 청결, 듣기 편안한 목소리 톤을 갖추는 것 역시 필수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인사들이 ‘당연히 전문 통역사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해됐다. 이들은 인사의 입국부터 출국까지의 기간 내내 통역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질문을 머쓱하게 하는 답이 돌아왔다. 염 봉사자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여는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이다. 평화 실현을 위해 인사들이 이 먼 길을 와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라며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와 인사들이 가까이서 평화에 대해 소통하는 만큼 행사 후에도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한 가족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들도 우리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많이 묻는다. 우리 대답은 한결같다. ‘평화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라며 “더불어 ‘우리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인사들이 HWPL의 평화 사업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임해줬으면’ 하는 소망도 있다”고 덧붙였다.

짧은 만남과 동행, 대화였지만, 그때마다 묻어나는 봉사자들의 ‘평화를 향한 올곧은 진심’은 인사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부산 | 김태현 기자 localbu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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