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프레지던트’이순재“배우는창조자…한때악역만33번”

입력 2009-10-14 15: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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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역을 맡아 베테랑 연기자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고두심(왼쪽)과 이순재.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복권당첨에쩔쩔매는대통령이순재이혼위기고뇌하는첫女대통령고두심
두 명의 ‘대통령’을 만났다. 이들이 맞닥뜨린 예사롭지 않은 상황. 과연 이들은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갈까. 22일 개봉하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감독 장진·제작 소란플레이먼트) 속에서 배우 이순재와 고두심은 각각 민주화운동의 역경을 지나온 대통령과 첫 여성 대통령이 된다. 240억원의 복권 1등에 당첨된 대통령 이순재와 이혼의 위기에 처한 여성 대통령 고두심. 극중 두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가 꿈꾸는 대통령”의 것이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에서 민주화운동의 역경을 지나온 대통령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이순재.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 이순재

“새벽 5시까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촬영하고 왔어요. 시트콤이 일반 드라마보다 세 배는 더 힘들어.”

다소 피곤해 보이지만 이순재의 얼굴에서는 환하고 편안한 웃음이 묻어났다. 그것은 1976년 ‘집념’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 코미디 영화에서 연기를 펼쳤다.

“배우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장르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코믹 연기도 연기의 한 형태일 뿐이다.”

- 장동건의 연기는 어떤가.

“지적 표현이 좋더라. 발음도 좋았고. 우리는 대사 중심의 연기를 해왔다. 그래서 요즘 젊은 배우들의 화술이 불만스러운데 장동건이 잘해줬다. 1997년에 드라마 ‘의가형제’를 보면서 ‘잘 생긴 청년이 나왔구나’ 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몸을 아끼지 않는 친구이구나’ 생각했다. 이제는 지적 표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하다. 그건 언어이고 말에 따라 그 표현이 되고 안되고가 달렸다. 과연 이 작품에서 대통령의 화법을 어떻게 연기할까 했는데 잘 됐다. 억양과 발음도 적절하다.”

- 영화 속처럼 복권에 당첨된다면.

“로또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본 적도 없다.”

- 30여년 만에 주연으로서 영화를 개봉한다.

“2000년대 들어 ‘파랑주의보’나 ‘음란서생’ 등에 출연했지만 요즘에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알고 싶어 했다. 대단히 풍요롭고 전문화했더라. 전공자들도 많고. 미래 가능성이 많다.”

- 이상적인 대통령상이 있을까.

“청렴함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것에 대한 사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한 뒤 편안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좋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대통령이 없었다. 정치인이 무슨 돈을 벌겠나. 임기가 끝난 뒤 30평 짜리 아파트로 돌아가 산다면 국민들도 아무 걱정하지 않고 감동할 거다. 또 극중 내가 국민대통합을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도 같다. 그걸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지금이 이념대결을 할 때인가. 후배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이고 목표라면 타협하고 협의할 수 있는 거다.”

- 오랜 세월 연기를 할 수 있게 하는 열정의 근원은 뭘까.

“우린 창조자다. 내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 아버지 같은 역할을 계속 했다면 지금의 난 없다. 새로운 걸 만들어가야 한다. 이젠 할아버지 역을 하지만 어떤 할아버지로 보일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60년대에 드라마 ‘형사수첩’에서 강도, 강간치사범 등 범인 역할만 33번 했다. 예전엔 악역을 연기하면 인기 면에서 손해였는데 달콤한 멜로드라마를 하니 그런 편견이 없어지더라.”

이순재는 젊은 시절 “클로드 를루슈, 장 르누아르 등은 물론 네오 리얼리즘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보며 ‘아! 예술이다’고 생각하며 연기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대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배우를 직업으로까지 갖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신성일이나 남궁원처럼 ‘얼짱’이 아니었고” 자신은 돈을 벌려고 TV드라마에 출연했고 이후 영화로 영역을 넓혔다면서 “영화에 많은 욕심이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필름을 두루마리 화장지를 돌려쓰듯 낭비하는 요즘 현장에선 다양한 리허설이 필요하다”면서 “그 과정에서 배우의 연기력이 다져지는 것”이라며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에서 첫 여성 대통령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고두심.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 고두심

“그건 나도 생각하지 못한 거였는데. 호호!”

한때 ‘맏며느리’의 전형으로 비쳤던 고두심은 유난히 영화 속 캐릭터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가족의 탄생’에서는 스무살 연하의 남자와 동거를 했고 ‘엄마’에서는 차만 타면 어지럼증을 앓는 노모의 모습이었다. ‘인어공주’에서는 때밀이로 살아가는 억척스런 엄마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영화 속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의 영화 캐릭터 여행에 스스로 행복해했다.

-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기자회견에서 헤어스타일이 화제를 모았다.

“매일 그러고 다닐 수는 없잖은가. 장동건과 한채영이 너무 키가 커 내 머리카락이라도 부풀리면 될까 했는데, 역시….(웃음) 인순이가 잘 하는 스타일인데 난 특별히 기분내고 싶을 때 한다.”

- 여성 대통령 역을 연기하며 떠올린 인물이 있나.

“없다.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그리는 영화인만큼 그저 편하게 나를 가져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 모습이 멋있더라. 그런 모습의 느낌을 드러내고 싶었다. 사실 장진 감독이 날 보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서 읽었는데 초반에 내가 대변인 역으로 등장하더라. 그래서 지금 이걸 나보고 하라는 거냐고 따졌더니 끝까지 읽어보라고 했다.”(웃음)

- 극중 전임 대통령인 이순재와 장동건으로부터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이곳에 가보라. 답이 있을 것이다’는 조언을 듣고 주방을 찾아 조리사를 만난다.

“그들 역시 그 안에서 답을 찾았다. 주방은 굉장히 편안한 곳이다. 배고픔을 채워주기도 하고. 사실 배고픈 시대를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여러분보다는 그 배고픔에 대해 상세히 들은 세대다. 그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이 가장 크기 때문에 그것을 풀어주는 곳, 주방이 아닐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이다.”

- 영화 속 캐릭터가 대부분 파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러네.(웃음) 그럴 땐 왜 꼭 날 찾지?(웃음) 난 사실 작품을 선택할 때 상대의 인간적인 면을 우선시한다. 따뜻한 사람과 일하고 싶다.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작품을 하나 하면 6개월이 훌쩍 지나는데 그 사이 불편한 사람과 교감하기는 싫다.”

-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완성도에 만족하는가.

“자화자찬하고 싶다. 감독이 잘 만들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상하게 뭔가 여전히 진행 중인 것 같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 정치 입문 제안은 받아보지 않았나.

“그렇다고 얘기할 수 없지만 한 마디로 거절했다. ‘신문의 어려운 한자를 모두 해독할 수 있게 되는 날 정치하겠다’면서. 또 대통령은 정말 쉽지 않은 자리일 거다.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내 길은 배우이다. 어릴 때 꿈이었고 그걸 이루며 가는 삶에 만족한다.”

- 극중 남편인 임하룡과 추는 왈츠가 일품이다.

“열심히 연습했다. 왈츠 장면은 저녁을 먹고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촬영한 신이다. 나중엔 이슬을 맞아 으슬으슬 춥더라. 하지만 우아한 자세를 유지해야 해서 어려웠다.”

고두심은 기자들과 만나는 내내 환한 웃음을 웃었다. 그 선한 눈매의 따스한 웃음은 ‘굿모닝 프레지던트’ 속 인간적인 대통령의 것을 닮아 있었다.
배우 고두심은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담백하게 드러내며 젊은 관객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가고 있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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