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선덕여왕 ‘이요원’

입력 2009-11-15 17: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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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덕만공주’에 적합한 배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진=MBC

○ 주유소 알바녀에서 불륜녀를 거쳐 패도(覇道)의 길로…
○ 거대한 운명에 맞선 ‘착한 의지(Will)'의 표상
○팜므파탈 ‘미실’의 포스에 맞서는 순결한 선함
방송가에서는 이요원(29)에 대해 '시트콤에는 절대 출연할 수 없는 배우'라고 말한다. 반면 그는 역사물이나 진지한 드라마 등 선 굵은 여배우를 찾는 감독들이 맨처음에 찾는 배우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선 굵은 여배우'를 찾는 감독의 유일한 선택

그는 데뷔한 지 12년이 지난 톱스타이면서도 단 한 번도 연예계의 중심에 선 일이 없다. 대중들은 '이요원'이란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20대 여배우들에게 집중될만한 신변잡기적 가십의 대상이 아니다.

 배우 이요원은 ‘선덕여왕’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우뚝섰다. 그는 또래 가운데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배우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출처·MBC ‘선덕여왕’)


하지만 그는 데뷔 이후 줄곧 수많은 작가와 PD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연기력'을 논하기 이른 10대 후반부터 언제나 주연급으로 발탁됐고, 늘 그 아니면 안되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들이 주어졌다.

이요원이 주로 맡는 역할은 거대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절대 비굴하지 않은 꼿꼿한 여성이다. '패션 70s'의 더미가 그랬고 '화려한 휴가'의 박신애가 그랬듯이 말이다(심지어 '다모' 하지원 역, '태극기 휘날리며'의 이은주 역, '클래식'의 손예진 역이 맨처음 오퍼가 간 곳은 이요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은 그에게 무심하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을 20, 30대 젊은 시청자들마저도 "왜 그가 매번 주연급으로 발탁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22세에 결혼한 품절녀다. 고현정에 필적할 포스는커녕 가냘픈 이미지에 김태희 같은 미모도 아니고, 이웃집 누나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 성품 또한 차분한지라 특별히 사고 칠 일이 없어 연예부 기자들의 주목을 끌지도 않는다. 실제로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여배우다.

그런 그가 이제는 한국 여배우로는 전인미답의 '대왕()'역을 연기한다. 국민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말이다.

배우 이요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

2009년 11월1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1000년 제국' 신라를 좌지우지 한 미실이 자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죽는 순간을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바로 코앞에서 지켜봤으니, 미실은 죽었어도 영원히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남은 셈이 됐다.

애당초 이 드라마는 미실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고현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 미실이 가진 불행한 개인사는 이혼경력을 지닌 고현정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섹시하되 고결하며 아름답지만 칼날을 숨긴' 여인. 역사의 변방에 머문 '미실'을 택해 크게 키울 줄 아는 고현정의 탁월한 선구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실제 고현정이 아니었다면 미실이란 캐릭터가 이토록 각광받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미실은 서구 고전물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매력과 함께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치열한 야심'을 촘촘히 드러낸, 캐릭터의 신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캔디류'라 정의할 수 있는 '대장금'에 머물러 있던 고전적 여성 캐릭터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전형을 창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요원이 연기한 '덕만공주'는 실패한 캐릭터인가?

실제 미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덕만'이란 존재는 한없이 초라한 역사 속의 승리자에 불과하다. 신분제도라는 기득권에 기댄 지극히 당연한 승리였기 때문에, 역사의 전복을 꿈꾸며 미실이란 영웅의 죽음에 연민을 느낀 이들은 덕만공주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중은 언제나 역사의 실패자에게 마음이 쏠리지 않았던가.

어떤 이들은 "선덕여왕의 실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실' 고현정"이라고 정의한다. 심지어 이요원이 연기한 덕만은 '고미실'에 압도됐으니 드라마 제목도 <미실>이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이요원은 '미스캐스팅'이라고까지 지적한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만난 덕만공주는 여전히 '선덕여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12회(혹은 그 이상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분에서 그가 공주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여왕'에 진입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밋밋한 평가는 순식간에 폭발적인 긍정으로 뒤바뀔 소지가 농후하다.

또 하나의 반론은 '고미실'의 팜므파탈이 이요원이라는 '한없이 투명한 선()함'의 조응 없이 제 빛을 발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요원에 성이 차지 않는다면 덕만공주 위치에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대한민국 여배우라도 대입해 보면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대체하지 못할 전혀 새로운 포스가 존재한다. 그것을 '운명에 맞선 의지'라고 말할 수도, '21세기 신여성의 표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 어째됐건 감독과 작가의 말대로 그는 20대에 선덕여왕을 연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배우다. 이제껏 이요원이 보여준 연기의 성장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이제 공격권은 고현정의 손을 떠나 이요원의 손에 쥐어졌다. 우리는 발레극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검은 백조'의 연기를 감상했을 뿐이고 이어 펼쳐질 진짜 주인공 '하얀백조', 즉 선덕여왕의 즉위를 기다려야만 한다.

보이시한 매력, 중성적인가 이중성인가?

이요원의 연기 인생은 '우연'에서 비롯돼 '운명'으로 발전했다.

학창시절(1997년) 응모한 여고생 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뒤 예정된 코스처럼 잡지 표지모델에서 패션모델로 전향했고, CF모델을 거쳐 학원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 입문했다. 처음에는 단역으로 시작해 "모델치곤 연기 잘한다"는 평가에 고무돼 점차 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늘씬한 키(170cm)에 선머슴 같은 외모였지만 대단히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어린 시절 그의 엄마가 "성격을 고쳐놓겠다"고 벼를 정도였단다. 학창시절 지나치게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그는 또래 모델이나 배우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대기실에 늘 혼자 앉아 있었다고 회고한다.

대중이 기억하는 이요원의 첫 모습은 '주유소 습격사건(1999)'의 깔치 역이다. IMF 직후 '루저(loser)'들의 얘기를 코미디로 승화한 이 작품은 유오성 이성재 유지태 등 쟁쟁한 남자배우가 등장했는데 희한하게도 여배우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등장하는 이요원이 유일했다. 여기서 그는 강금과 협박이란 범상치 않은 상황에 간단히 제압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짜증을 부리는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흔히 충무로에서는 이를 '존재감'으로 표현한다. 등장 시간의 장단과 무관하게 순식간에 관객을 시선을 집중시키는 태생적 배우기질 말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요원의 얼굴이나 성격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알바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이시하고 거친 남자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강단 있는 품새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얄밉지만 똑똑한 혜주로 등장했다. 가난으로 여상()에 진학했지만 성공에 대한 꿈을 포기 않는 청춘. 문제는 증권사에 취업한 여상출신이 펼칠 야심이란 우리 사회에 그리 크지 않다는 것. 그는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한없이 좌절하지만 그 벽에 무릎 꿇지 않는다. 고양이로 표상된 '청춘의 꿈'을 잠시 위탁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여성. 여성성과 남성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이요원의 10대 이미지였다.


판타지 스타가 아닌, 그냥 직업이 배우

"발랄한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2007년 화려한 휴가 촬영 직후)

적잖은 평론가들이 그에게 '선머슴같다, 보이시하다'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의외로 여성스럽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 그는 예쁜 배우 가운데 하나다.

초기에는 잘 성장하면 문근영같은 '국민여동생'의 한 축을 맡지 않을까 했지만 그는 의외로 여성스러운 배역을 택했다.

1차 파격을 일으킨 것은 이경영, 김미숙과 열연한 드라마 2001년작 <푸른안개>. 참신한 이미지에 성숙미를 살짝 얹어 원조교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에서 국민여동생이 아닌 로맨스그레이족들의 아이콘이자 '제2의 심은하'라는 타이틀까지 따라붙었다.

단순한 불륜물이 아니었다. 21살의 여대생이 아버지뻘인 46세의 유부남을 사랑한다는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선배인 심은하가 <청춘의 덫>에서 의도된 복수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요부)을 연기했다면 '이요원식 선택'이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와 마치 예고된 것 같은 '파멸'으로 종결됐다.

"투 톤 셔츠 라고 아세요? 몸통부분과 소매 부분의 색깔이 다른 셔츠 말이에요. 마치 그것처럼 제가 알쏭달쏭하게 생겼나 봐요."(2001년 동아일보 인터뷰)

스스로 '투 톤 셔츠'로 비유한 것처럼 그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자유롭게 오갈 줄 아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요즘 <선덕여왕> 촬영장에서는 선배 화랑들에게 아예 대 놓고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야만 덕만의 정서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2002년작 <대망>에서는 선덕여왕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권세를 잡은 금평대군에 대항하던 세자와 여진아씨(이요원)의 선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세자는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오히려 여성인 여진아씨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치고 갈등한다(<선덕여왕>에서 김춘추가 음험하게도 미실과의 싸움을 피하는 대목과 흡사하다). <대망>에서 남자가 현실에 순응하고 여성이 갈등한다는 설정은 모래시계 송지나 작가의 의도인지 몰라도 새로운 여성상의 표상을 제시한 것이다.

한 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다는 그의 말대로 그는 <서프라이즈>나 <아프리카>처럼 여성성과 강인함이 미묘하게 혼재된 배역에 주로 캐스팅됐다.

그러다 한참 잘나가는 시기에 2차 파격을 보였다. 한창 스타대열에 오를 무렵인 22세때 결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 것.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이다.

이런 그에게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자 배우라는 직업과는 무관한 일로 비친다.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깨어버리고 싶은 것은 결혼을 한 여배우의 이미지"라며 "내 사생활을 보지 않고 연기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3년 동안 아이를 낳고 대학(단국대 영연과)로 돌아가 여느 학생들처럼 지독하게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갔다. "여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이 싫다. 나쁜 이미지를 주기 싫어서 기를 쓰고 학교를 다녔다"는 회고가 있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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