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너무 못 하는 연기자는 ‘발 연기’라며 조롱을 받는다. 하지만 가수 겸 연기자 장수원은 “매도 빨리 맞는 게 나았다”며 다행으로 여겼다. ‘발 연기’를 무기로 ‘대세’들만 찍는다는 이동통신 광고까지 섭렵했다. 스포츠동아DB
그룹 ‘젝키’ 출신…90년대 10대의 우상
KBS ‘사랑과 전쟁’ 로봇연기로 뭇매
이통사 발로미 CF 330만 조회 전화위복
광고사 “200만 조회 넘으면 칸 보내준다”
“‘발 연기’로 프랑스 칸에 가는 시대가 오다니! 하하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연기를 너무 못해 ‘발 연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서더니, 이제는 ‘발 연기’로 CF까지 찍었다.
최근 한 이동통신사의 온라인 광고 ‘발로 미’에 출연한 가수 겸 연기자 장수원(34)의 이야기다. 광고 속 장수원은 경직된 표정과 어색한 말투로 누리꾼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누리꾼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발 연기의 대가”라며 흥미를 드러냈고, 해당 광고는 18일 현재 조회수 330만건을 넘어섰다. 공개 당시 해당 광고사는 조회수 200만건을 넘으면 장수원에게 프랑스 칸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영화제나 광고제 같은 곳에 가는 줄 알았다. 말 그대로 칸에 가서 ‘인증샷’만 찍고 오는 거다.”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 한 켠에서는 여전히 얼떨떨함이 묻어난다.
장수원은 ‘한때’ 10대의 우상이었다. 1997년대 그룹 젝스키스로 활동하며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활동 당시에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조금 더’ 잘 생긴 외모와 신비로운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리도 ‘한 순간에 망가진 것’일까.
“처음에 CF 제의가 들어왔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 통신사 광고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만 출연하니 말이다. 게다가 ‘발 연기’로 광고를 찍으라니, 누가 믿겠는가. 아무리 패러디라고 해도 광고주도 무리수를 던진 것 같았다. CF감독이 ‘이렇게 연기를 잘 하면 안 된다’고까지 했다. 더 뻣뻣하게, 더 어색하게 연기하라고 주문하더라.”
장수원은 높낮이 없는 목소리와 미동 없는 표정으로 ‘로봇 연기’로까지 불렸다. 사진출처|광고 화면 캡처
장수원은 지난해 방송한 KBS 2TV ‘사랑과 전쟁’에 출연해 국어책을 읽는 듯한 말투와 로봇처럼 행동해 ‘발 연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당시를 돌이키며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다”고 했다.
“핑계를 대자면, 촉박하게 흘러가는 현장에 적응 못하기도 했다. 나도 연기를 못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지만 그 정도일 줄 정말 몰랐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 중에서 잘 하는 친구들과 못하는 나, 이렇게 나뉘었다. 씁쓸했다.”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는 “오히려 연기를 오래 준비하고 질타를 받았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만큼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애써 숨을 돌린다. 그리고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처음부터 비난을 받아 다행”이라며 “이제 시작했으니 불러만 주면 언제든지 도전할 것이다. 이번엔 꼭 준비를 많이 하겠다!”는 다짐을 힘찬 목소리로 전했다.
그런 장수원을 곁에서 응원해 주는 이들 가운데 젝스키스의 멤버들이 있다. 특히 강성훈은 “이제야 장수원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훈은 아예 인터뷰 장소에 나타나 장수원과 여전히 두터운 우정을 과시했다. 그만큼 젝스키스 멤버들은 서로 자주 만남을 갖고 대화를 나눈다. 아이돌 1세대 출신다운 자부심도 크다.
그런 그들을 한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물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과거의 명예를 되찾은 행복감과 동료들과 쌓아온 우정이 빛을 발할 또 다른 무대에 대한 설렘이 묻어났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