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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 대중음악 가수 가운데 유일하게 ‘황제’로 불리는 이유는 비단 800여 곡에 달하는 자작곡과 120여 곡이 넘는 경이로운 히트곡 수 때문만은 아니다. 나훈아는 세상의 어둠과 불합리에 맞서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서민들의 설움을 노래로 달래준 ‘이 시대의 가수’였다.
1967년 정식 데뷔한 그는 남진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1970년대를 주름잡은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강인한 카리스마, 현재 전통가요의 기본 공식이 된 독특한 ‘꺾기 창법’, 작사·작곡뿐 아니라 무대 연출까지 직접 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진면모 등이 순식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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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10~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KSPO)돔에서 열린 은퇴 공연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에서 “내가 우리나라에서 히트곡이 제일 많은 가수다. 자작곡을 제일 많이 히트시킨 가수도 나다”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8년 가수 나훈아가 괴소문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걸 밝히겠다며 허리띠를 풀어 헤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더불어 후배 가수들에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 기폭제 역할도 했다. 김 평론가는 2008년 기자회견 등을 예로 들며 “나훈아의 사례 이후 연예계 전반에 명예훼손 법적조치 등에 대한 기반이 마련됐다”고 짚었다.
당시 나훈아는 일본 야쿠자와 시비가 붙어 중요 부위가 절단됐단 풍문이 돌자 단상 위에 올라 바지춤을 내린 후 “5분간 보여 드리겠다”고 초강수를 두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진제공|예아라 예소리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나훈아는 ‘머나먼 고향’ ‘물레방아 도는데’ ‘고향역’ 등 고향 소재의 노래들을 통해 남북갈등, 산업화 등에 따른 디아스포라(이주민 집단) 시대에 거대한 위로의 시스템을 구축한 가수”라고 강조했다.
또 임 평론가는 “뿐만 아니라 ‘테스형!’ 등의 신곡들을 통해 10~20대에도 존재감을 알리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절대적 가수가 됐다”며 “세대 동행의 힘이 나훈아 인기의 핵심”이라 짚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