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살인자o난감’ 인터뷰를 통해 동아닷컴과 만난 이희준. 그는 ‘살인자o난감’에서 비틀린 신념으로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송촌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봤다.
‘살인자o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과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장난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웹툰 작가 꼬마비의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했다.
이희준은 한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 역시도 살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송촌을 열연했다. 4회 엔딩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송촌은 어쩌다 악인 감별 능력을 각성한 평범한 대학생 이탕과 대비되는 연쇄살인마로 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희준은 “송촌에게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송촌은 왜 이렇게 이탕을 만나고 싶어 할까?’는 의문이 있었다. 그러다 30대 초반 소극장에서 연극하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송새벽이라는 애가 잘한다던데?’ 소문이 들리면 몰래 가서 보곤 했다. ‘도긴개긴’인데 우리끼리는 강호의 고수들처럼 그런 게 있었다”면서 “송촌의 입장에선 나를 믿어주던 조력자 노빈(김요한)이 이탕과 바람피운 것이지 않나. 나를 버리고 더 능력 있는 놈이 있다고? 바람 난 부인에게 뭐라고 하는 기분이더라. 자신과 달리 초능력 같이 빈틈없이 (살인을) 해낼 수 있는 이탕에 질투심과 화도 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송촌의 과거가 밝혀졌을 때는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믿었던 선배 형사의 말(스포주의)에 상처가 얼마나 컸겠나. 얼마나 아플까 싶었다”면서 “동물병원을 배경으로 고양이 앞에서 송촌이 혼잣말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신이다. 얘기할 상대가 없어서 고양이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거다. 외로워 보이더라. 묘하고 매력적인 신이었다. 편집될 뻔 했는데 내가 반대했다. 편집됐으면 정말 아쉬울 뻔 했다”고 털어놨다.
송촌의 연령대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60대 노인으로 설정됐다. 40대 이희준은 송촌 역할을 제안받고 의아하면서도 흥분했다고. 그는 “내가 65세의 인물을 연기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내 모습을 감독님들이 제안해줄 때 되게 황당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라며 “분명히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제안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했다”고 고백했다.
‘60대 연쇄살인마 송촌’. 어쩌면 뜬구름 잡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그 어느 것 하나 접점이 없는 캐릭터였기에 이희준은 관찰하고 연구했다. 원작 웹툰도 찾아봤지만 우리 곁에 실존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소스를 얻었다. 익선동 일대를 직접 다니며 어르신들을 지켜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며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촬영 중인 넷플릭스 ‘악연’에서는 30대 초반 날라리 캐릭터를 맡았다며 자정쯤 미아의 먹자골목으로 그런 애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희준은 “실체를 눈으로 봐야 이해가 되는 편이라 많이 찾으려고 한다”며 “송촌을 준비하면서 다른 영화에서 레퍼런스를 찾은 건 거의 없었다. 실제 다큐멘터리나 사람을 관찰하는 데서 확신을 느낀다. 사냥하듯이 소스를 찾아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습관이냐 혹은 입금의 영향이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그는 “입금은 생각보다 늦어서 체감이 안 된다”고 받아치며 웃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방을 하나 사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가방만 보이지 않나. 그런 관심인 것 같다. 역할을 맡으면 그때부터 관심이 생기고 소스로 삼을 요소가 보인다. 어떤 때에는 시간을 내서 소스 채집을 다닌다”고 밝혔다.
‘살인자o난감’에서 송촌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탕과 폐업한 콜라텍에서 드디어 마주한다. 이희준은 “그 신을 찍을 때 정말 재밌었다. 이탕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같이 일하자고 감히 굽히고 이야기했는데 끝내 기대가 무너지지 않나. 자존심도 뭔가 상하고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우식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정말 유쾌하고 겸손하고 재밌는 친구다.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이탕과의 만남 후에는 조직폭력배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희준은 가장 난도가 높았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인네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 주먹다짐을 겪었겠나. 싸우기 시작하면 핏기가 내려가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즐기는 노인이면 멋있겠다 싶었다. 내 욕심에는 타이트하게 바스트샷이었으면 싶었지만 풀샷으로 찍으셨더라”면서 “송촌이 어떤 삶을 겪었고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힘들지만 재밌게 찍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액션을 좋아하는 것 같다. 촬영 두 달 전부터 합을 짜서 바닥에 구조도 그려놓고 연습했다. 할아버지인데 너무 민첩한 액션은 맞지 않으니까 그것도 고려했다. 대역을 못 쓰게 계속 얼굴이 다 나오게 찍으셔서(웃음) 직접 다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서 씻는데 몸에 멍이 들었더라. 기분이 좋았다. 진짜 멋진 거 한 것 같은 느낌에 카타르시스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스스로 연기에 만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고백했다. 이희준은 “첫 영화가 ‘부당거래’(2010)였는데 NG를 아홉 번 내고 그날 한숨도 못 잤다.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 엄청 괴롭혔다. 그런데 욕심을 내봤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지 않나.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배역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면 아내 이혜정으로부터 “눈X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인물에 젖어든다는 이희준. 때문에 항상 명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멘탈 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희준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부터 공황장애를 겪었다. 연기를 그만 둘까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좋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있지만 애쓰고 있다. ‘잘하고 싶었구나?’ ‘괜찮아. 시간을 가져’ 하며 천천히 스스로를 받아주는 태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희연 동아닷컴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