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만 같은 수식어들이 가리키는 단 한 사람. 배우 권율이다. 최근 안방극장에서만 해도 극과 극의 얼굴을 내보이면서 독특한 별명들을 수집했다. 6일 종영한 SBS 드라마 ‘커넥션’에서는 입을 얼얼하게 만드는 악행을 저질러 ‘마라맛 빌런’으로, JTBC ‘놀아주는 여자’에서는 다정하고 젠틀한 매력을 드러내며 ‘심쿵 유발자’로 불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카메라 밖을 벗어나면 더욱 깜짝 놀랄 ‘얼굴’이 줄줄이 나온다. 맛집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춰 주변에서 ‘맛집 전도사’로 꼽힌다. 취미인 농구에 푹 빠져 다양한 경기의 스페셜 캐스터로 참여하면서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농구 덕후’로 통한다.
관심사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깊이 있게 파고드는 집념이 그를 지금의 ‘수식어 콜렉터’ 자리에 올려뒀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권율은 “어떤 분야에서든 나만의 철학이 있고, 일관된 삶의 태도를 유지해야 흔들리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모든 것에 진심을 다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드라마 ‘커넥션’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그는 ‘커넥션’에서 마약을 만들어 파는 비리 검사 박태진을 연기했다. 앞서 SBS ‘귓속말’, OCN ‘보이스’ 등에서 수많은 악역을 소화했지만, 이번처럼 패륜을 저지른 캐릭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인 마약 카르텔을 조종하고,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즐기는 건 기본이다. 또 다른 동창이자 기자 역을 맡은 전미도에게 달려들어 이마에 핏줄이 설 만큼 목을 조르거나, 타의에 의해 마약에 중독된 경찰 지성을 자극하려 막말을 퍼붓는 장면은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최후가 그려지는 장면이 담긴 대본을 받고는 2주 정도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불안감과 고민이 가득한 때도 많았죠. 사실 형량으로 따져보면 앞서 ‘보이스’에서 연기한 연쇄살인마 같은 캐릭터가 훨씬 죄질이 무거워요. 그럼에도 유난히 박태진 캐릭터가 악독해 보인 이유는 입체적인 ‘완전체’였기 때문 아닐까요? 덕분에 저도 더욱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었어요.”
마약수사대 형사 지성과 기자 전미도가 마약 범죄의 진실과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는 ‘커넥션’은 얼핏 수사 이야기가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에 대한 메시지가 뼈대를 이루면서 시청자에 많은 생각과 여운을 안겼다.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마약, 재벌가 상속 싸움보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본질이었어요. 사실 오래된 친구 사이라도 서로 삶의 목적지가 달라지면서 관계가 바뀌고 옅어지기 마련이거든요. 배반이 자연스러운 시대에서 순수한 우정의 가치를 잘 짚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게 있어서 우정은 가족 범주에 포함돼요. 진입장벽이 높아서 한두 명에 그칠 수 있겠지만, 무슨 손해를 보더라도 보듬어줄 수 있는 관계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우정에 대한 가치관뿐 아니라 연기에 대한 생각까지 바꿔 놨다. 그는 “다양한 의미로 내 배우 인생에서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고 돌이켰다.
“이전에는 내가 모든 무게를 스스로 책임지고,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그 무게를 모두와 나누고 싶었어요. (짐을)들어달라고 하고 싶었고, 들어주고 싶었죠. 동료들에게 기대 함께 만들어간 장면은 혼자 책임지려 애썼던 순간보다 열 곱절 이상이 묵직하게 울림이 생겼어요. 너무나 감사했어요.”
‘커넥션’과 같은 검사 역할로 등장하는 ‘놀아주는 여자’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방송됐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며 웃었다. 최근 방송 중인 ‘놀아주는 여자’에서는 키즈 크리에이터 역 한선화, 전직 조폭 엄태구와 삼각관계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 정말 많은데도 불구하고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잖아요.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 없이 감사한 마음만 들었어요. ‘놀아주는 여자’에서도 막판에 나쁜 캐릭터로 바뀌는 거 아니냐고요? 가만있어 봐. 내가 거기서 죽인 사람이 몇 명이더라? 하하, 농담입니다. 아직 방송 중이라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맛집, 농구 모두 진심”
방송가에는 ‘맛집 전도사’ 캐릭터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채널S ‘히든미식로드-뚜벅이 맛총사’, tvN ‘줄서는 식당’ 등 음식 소재 프로그램들에서 음식에 대한 깊은 조예와 풍부한 맛집 정보를 드러내며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맛집을 추천해달란 요청에도 허투루 응하지 않는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수와 자리의 성격, 식재료 기호까지 따진다. 그런 그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온갖 맛집들이 지역별로 나뉘어 빼곡하게 나열된 ‘맛집 리스트’가 띄워져 있었다. 문을 연 지 이틀 밖에 안 된 ‘신상 맛집’까지 직접 찾아내 적어뒀다고 한다.
“tvN ‘줄서는 식당’에서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제작진에 역으로 맛집을 제안해서 MC 자리까지 꿰찼어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맛집 아이콘’으로서의 저변이 확대됐죠. 주변 사람들에게 딱 맞는 맛집을 찾아주기 위해 고민하는 게 재미있어요. 음식 관련 유튜브를 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취미는 취미로 남겨야죠. 맛집 탐방은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저만의 무대거든요.”
어릴 적부터 농구 팬인 그는 한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벌써 3년째 미국프로농구(NBA) 특별 캐스터로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몸과 삶을 훈련으로 컨트롤하는 운동선수들의 모습”이 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연기의 팀플레이에 대한 교훈도 수시로 상기시키고 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연기의 팀플레이에 대한 교훈도 많이 얻어요. ‘커넥션’을 촬영하면서도 완벽한 팀플레이를 경험했죠. 지성 형과 (전)미도 씨가 주장과 부주장으로서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저는 락커룸의 ‘보컬리더’(팀의 분위기를 끌어주는 베테랑 선수)로서 한 팀으로 뭉치도록 노력했죠.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면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잖아요. 그 진리를 잊지 말아야죠.”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