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저 멀리 뒤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북한산 둘레길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저 멀리 뒤로 백운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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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오랜만에 꺼낸 등산복을 ‘잘 다려’ 입었다. 목적지는 우이동 북한산 서울등산관광센터. 서울관광재단 담당자는 “오늘은 별 한 개짜리, 난이도 최하 코스”라고 했다. 안심이 되면서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1시간 후 내 허벅지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서울 등산이 ‘핫’하다. 기사로 몇 번 다루긴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피부에 닿는 열기가 국밥처럼 뜨끈하다. 서울관광재단이 주관하는 ‘2026 서울하이킹위크’ 기간. 신청자 28명이 출석했는데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동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중앙아시아, 싱가포르, 프랑스 등 국적도 다채롭다.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유학생부터 순수 관광을 위해 방문한 부부까지 사연도 다양하다.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북한산 서울등산관광센터 내부 모습.   양형모 기자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북한산 서울등산관광센터 내부 모습. 양형모 기자

서울등산관광센터에서는 의류, 신발, 배낭 등 거의 모든 등산 장비를 저렴한 비용으로 빌릴 수 있다.  양형모 기자

서울등산관광센터에서는 의류, 신발, 배낭 등 거의 모든 등산 장비를 저렴한 비용으로 빌릴 수 있다. 양형모 기자

본격적인 둘레길 탐방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본격적인 둘레길 탐방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센터에서는 등산화, 등산복, 스틱 등 장비를 소액으로 빌려준다. 겨울철 필수품인 아이젠도 있다. 무겁게 짐을 챙길 필요 없이 몸만 오면 산신령 세팅이 끝난다. 센터 옥상에 모여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친 뒤 돌아가며 짧은 인사를 나눴다. “하이, 에브리원. 아임 양. 스포츠동아 리뽀~러.”
정의공주묘. 북한산 둘레길 방학3동 역사문화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있다.   양형모 기자

정의공주묘. 북한산 둘레길 방학3동 역사문화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있다. 양형모 기자


본격적인 출발이다. 북한산 둘레길 방학3동 역사문화길로 진입한다. 연산군묘가 있는 쪽이다. 북한산 둘레길이라면 제법 걸어봤는데, 이 코스는 처음이다. 곧이어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의 묘를 지난다. 이름만 들어서는 살아 생전 정의로운 일을 많이 하신 공주님 같다. 무려 아버지가 세종대왕이시다. 먼치킨급 DNA 덕분인지 지혜롭고 총명해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안내판이 나타났다. 목적지인 무수골까지 3.1km. 잠깐, 산길 3.1km라고? 별 하나짜리라더니. 슬슬 합리적인 의심이 피어오른다. ‘여기서부터는 방학동길입니다’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오르막 계단이 시작됐다.

도봉구에서 세워둔 ‘야생 멧돼지 출몰 가능 지역’ 경고판이 시선을 끈다. 경고판 속 멧돼지 그림이 어쩐지 목살구이를 떠오르게 한다. 경고의 효율을 높이려면 좀 더 험상궂게 그리는 게 낫지 않을까. 곧이어 연분홍 진달래 무리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개나리는 도심 아파트 단지에도 널렸지만, 어쩐 일인지 요즘 진달래는 귀해진 느낌이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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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경사가 가팔라진다. 마음속 난이도 별 하나 추가. 허벅지가 단단해지고 숨이 차오른다. 힘은 들지만 몸도 기분도 상쾌하다. 오랜만에 흘려보는 건강하고 짠 땀. 발 아래로 고층 아파트 단지가 얌전히 엎드려 있다.
“워터 브레이크!” 인솔자의 외침이 구세주 같다. 동행한 재단 직원이 젤리 하나를 건넸다. 땀을 흠뻑 흘린 뒤 먹어주는 당분은 100미터 질주하듯 위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나 더. 넙죽 받았다. 유명한 랜드마크인 쌍둥이전망대 도착.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전망대 꼭대기를 다리로 연결해 놓은 독특한 구조다. 이제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 추가한 별에서 반 개를 지운다.
북한산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쌍둥이전망대. 두 개의 전망대 정상을 다리로 이어놓아 오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양형모 기자

북한산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쌍둥이전망대. 두 개의 전망대 정상을 다리로 이어놓아 오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양형모 기자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무수골 녹색복지센터 산림치유센터가 모습을 보였다. 강사, 직원, 국립공원공단 레인저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곳은 일상에 지친 주민 누구나 숲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두 개 조로 나뉘어 본격적인 웰니스 체험에 돌입했다.

내가 속한 2조는 편백체험실부터 시작했다. 싱잉볼의 맑은 소리를 들으며 의료용 CT 촬영기처럼 생긴 편백나무 통 속에 들어가 누웠다. 향긋한 나무 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온몸이 따뜻하게 풀어진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좋은 몽롱함이 꼭 대장 내시경 받는 기분이다. 집에 이런 기계 하나 들여놓으면 참 좋겠다.
편백나무 통 속에 들어가 명상에 빠진 참가자들. 온열장치가 내장돼 있어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편백나무 통 속에 들어가 명상에 빠진 참가자들. 온열장치가 내장돼 있어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짧게 체험담을 나누는 시간. 한 친구가 “여기 오려고 아침 7시에 밥도 안 먹고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하자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 올리며 대단하다고 난리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인천에는 산이 없나”라고 했던 모양인데 다들 알아듣고는 빵 터졌다. 알고 보니 대부분 한국어 패치를 장착하고 있었다.
약초 족욕체험시간. 따끈한 약초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약초 족욕체험시간. 따끈한 약초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체험의 마지막 순서인 차 명상. 이날의 차는 새콤하고 달착지근한 매실차였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체험의 마지막 순서인 차 명상. 이날의 차는 새콤하고 달착지근한 매실차였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야외로 나가 약초물에 족욕을 하고 맨발로 돌 위를 걷는다. 발바닥이 짜릿하다. 싱가포르에서 온 아저씨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더니 “핫(Hot)! 핫!” 하며 야단이다. 아재요. 우리 코리언들은 이럴 때 “어으, 시원~하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차 명상. 강사가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셨는데, 무슨 차인지 맞혀보라는 질문에 제일 먼저 “매실차!”를 외쳤다. 외국인 친구들은 “꽃향기가 난다”, “향이 참 독특하다”며 제각기 감상을 내놓는다. 정답은 역시나 매실차. 그럼 그렇지. 너희가 매실주 맛을 알아?
무수골 녹색복지센터에서 힐링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이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무수골 녹색복지센터에서 힐링체험을 마친 참가자들이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관광재단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오늘의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타타르스탄 공화국에서 왔다는 레이산씨는 “등산 중 산속에 무덤이 많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며 “등산 후 진행된 스파 프로그램이 피로를 완벽하게 풀어줬다”고 극찬했다. 이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유(Therapy for your soul)를 경험할 수 있으니 다들 주저 말고 꼭 참여해 보라”고 독려했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이날 “원더풀” 대신 연신 “대박”을 외쳤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빌딩 숲 옆 국립공원. 그리고 그곳에서 누리는 완벽한 휴식. K-컬처의 바통을 이어받은 또 하나의 확실한 한류 콘텐츠가 탄생한 셈이다. 서울 등산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진짜 대박이다.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