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2시30분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 세 번째 주자로 나섰다.
그는 12시 48분에 10시간 18분에 걸친 밤샘 연설을 마치며 국내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앞서 연설한 같은 당 김광진 의원은 5시간32분,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은 1시간49분을 각각 발언했다.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기록은 1969년 8월 3선 개헌에 반대한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기록한 ‘10시간 15분’이다. 부자 감세를 막기 위해 8시간 37분 동안 연설한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의 대기록도 넘어섰다.
은수미 위원을 포함한 야당 의원들이 ‘테러방지법’ 본회의 처리를 막으려하는 이유는 그 안에 포함된 독소조항들 때문이다.
이번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에는 과거 여야 논의 끝에 수정 또는 삭제된 조항이 되살아났다.
독소조항들은 인권침해·권한 남용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러방지법’의 내용을 보면 제16조 1항에 따라 국정원장 산하의 테러통합대응센터가 테러단체의 구성원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의 출입국, 금융거래, 통신 이용정보 등을 수집·조사할 수 있다. 이밖에도 부칙의 내용에 따라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통신 제한 조치도 가능해진다.
통신 정보 수집·조사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제16조는 10년 전에도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바 있다. 해당 조항에 따라 통신 감청이 가능해지며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이 조항은 ‘테러단체의 구성원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오로지 국정원의 자의적 해석에 맡겨 권한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여야가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은수미 위원이 마지막에 전한 토론 내용에서 진정성이 전해지며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다.
은수미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하며 은 의원은 “나서야하기 때문에 나섭니다. 그게 참된 용기입니다”라고 울먹이며 마지막 연설 내용을 전했다. 장시간의 연설을 마치고 비틀거리며 단상에서 내려오자,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장시간 연설로 한때 말문이 막히기도 했으나, 동료 의원들로부터 응원과 격려 속에서 차분히 10시간 넘게 연설을 이어갔다.
한편, 은수미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해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부연구위원 등을 지낸 노동 전문가다.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다음은 은수미 의원의 마지막 발언 전문.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게 아니라, 나서야하기 때문에 나섭니다. 그게 참된 용기입니다. 참된 용기를 가진다는 것과 참된 용기를 왜 가지게 되었는지는 정치인한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초선 비례의원에게는 ‘내가 이 자리에 서야 되는지’ 혹은 ‘내가 용기를 더 내야하는지’ 항상적인 질문을 합니다. 내린 결론은 20대 때 간절한 것 이상으로 간절하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청년들이 누구를 밟거나 밟힌 경험만으로 20대를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청년’을 넣고 네이버 검색을 해봤습니다. 검색어 1위가 ‘알바’일거라고 추정했는데 ‘글자 수 세기’였습니다. 20대 청년한테 이 이야기하면 다 웃습니다. 회사에 지원하는데 ‘1000자 이내로 써라’고 해서 글자 수 세기 프로그램 돌린다는 겁니다. 청년하면 떠오르는 게 젊음도 아니고, 정열도 아니고, 축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고, 그런 모습으로 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기 인권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뿐만 아니라 타인 권리를 보장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미래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나이가 들면 우리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찬란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처음 대학 들어갔을 때봤던 장면은 전경으로 대표되는 독재였지만,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거라고 믿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있었던 2007년, 그때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건너편에서 비정규 노동자하고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참으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이 민주화되는데 기여했고 할 만큼 했노라 했는데 그렇지 않구나. 그 민주화된 세상에서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살고 누구는 청년 실업자로 살고, 누구는 자살해야하는구나’
대테러방지법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리냐하면,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해야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헌법이 그래서 있습니다. 헌법에 일자리, 노동, 복지 또 그 이상의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불가침의 인권,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탄압받아서는 안 되고...
누가 그래요. 대테러방지법 되어도 사람들이 밥은 먹고 살겠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헌법에 보장된 시민․주인으로서의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를 누려야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하고, 어떤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합니다.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못하고 할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그렇게 누차 이야기하고, 제발 다른 목소리 들어달라고 하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다른 방향이 있습니다. 나와 박대통령이 다름을 인정하거나 여당과 야당이 다름을 인정하고 제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단 한명도 인권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기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지. 대테러방지법을 비롯해서 다른 법에 대해 그렇게 박근혜 정부에게 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능하고 제가 무능한 탓에 항상 발목을 잡는 것으로 소개가 되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저의 주인이신 국민이 살아가야 되니깐요. 그분들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돌아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아닙니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은 도망치는 거 외에는 둥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자기 둥지를 부러뜨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고 대통령도 둥지를 부러뜨리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좀 버틴 게 당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요.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을 믿습니다. 통과되어도 언젠가는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또 누군가, 고통을 당해야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덜 고통 받는 방법을 제가, 정부․여당이 찾읍시다.
약자를 위한 정치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국민을 위해서 생각하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생각하는 국민과 제가 현장에서 직접 뵙는 국민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하면 같이 살까. 이 생각 좀 합시다. 피를 토한다던가, 목덜미를 문다던가, 이런 날선 표현들 말고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지, 힘내게 할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저의 필리버스터를 끝냅니다.
동아닷컴 윤우열 인턴기자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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