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명만 선택받은 은퇴경기…“그들은 진정한 전설”

입력 2010-09-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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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했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팬들의 따뜻한 격려와 관심이 있었기에 힘겨웠던 시간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지난해 9월 23일 대전 LG전에서 은퇴경기를 마친 뒤 후배들의 헹가래 속에 하늘 높이 솟구친 한화 송진우의 마음도 그랬을 듯하다. 은퇴의식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스타들에겐 축복의 무대다. 스포츠동아DB

매년 70∼80명 그라운드 떠나지만

은퇴식 통한 선수마감 통산 51명 뿐

양준혁 19일 15번째 은퇴경기 영광김재박·이순철·한대화·이종두 등

타팀 이적 후 존재감 없이 사라져

日서 은퇴한 선동열 기회 못잡아달은 차면 기울고, 뜨는 별이 있으면 지는 별이 있게 마련이다. 프로야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우리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그 스타들도 흐르는 세월을 거꾸로 되돌릴 순 없는 법. 삼성 양준혁이 19일 대구 SK전을 끝으로 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18년간 한결 같은 모습으로 팬 사랑을 독차지하며 한국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또 하나의 별이 진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저만치 멀어져가게 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양준혁의 시간은 팬들의 기억 속 한편에 전설로 남아 오래도록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양준혁이 걸어갈 새 길을 팬들은 두고두고 주목할 것이다. 양준혁의 아름다운 퇴장을 계기로 한국프로야구의 은퇴사(史)를 되돌아본다.


○은퇴식, 선택받은 소수의 특권

해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는 프로야구선수들은 어림잡아 70∼80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도 시즌 도중과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와 웨이버, 임의탈퇴 등의 형식으로 8개 구단에서 모두 88명이 방출됐다. 가까스로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데 성공한 선수들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는 소리 소문 없이 보따리를 쌌다. 지난해 은퇴한 선수 중 은퇴식 또는 은퇴경기를 치른 이는 한화 송진우 정민철 김민재, SK 조웅천 정경배, 삼성 김재걸, 넥센 김동수, LG 이종열 등 8명에 불과하다. 이 중 송진우는 지난해 은퇴선수 중 유일하게 은퇴경기까지 마쳤다. 통산 최다승(210), 최다 투구이닝(3003), 최다 탈삼진(2048), 최고령 출장과 승리 및 완투·완봉 기록 등 투수 부문의 기념비적인 이정표들을 대거 보유한 송진우는 은퇴경기였던 지난해 9월 23일 대전 LG전에서 선발로 1타자만을 상대한 뒤 21년간 지켜온 마운드를 총총히 걸어 내려왔다.

올해는 양준혁과 더불어 KIA 김종국, SK 김재현 안경현, 한화 이영우 등이 일찌감치 스스로 은퇴를 택했다. 김종국은 15일 광주 두산전에서 조촐한 은퇴식을 치렀고, 이영우는 18일 대전 롯데전에서 은퇴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김재현과 안경현은 사뭇 처지가 다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두 시즌만 SK에서 뛴 안경현은 “SK에서 보여준 게 없다”며 은퇴식을 고사했다. 또 지난해 한국시리즈 도중 비장하게 2010시즌 후 은퇴 결심을 밝힌 김재현에 대해선 SK 구단이 “포스트시즌까지 마친 뒤에라야 은퇴 세리머니의 형식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유동적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올 시즌까지 은퇴경기 또는 은퇴식으로 선수생활의 대미를 영예롭게 장식한 선수는 모두 51명(양준혁 이영우 포함)이다. 은퇴경기는 양준혁까지 15명에게만 허락됐다.


○은퇴식도 없이 떠난 비운의 스타들

삼성, KIA, LG는 전통의 스타 군단이다. 그러나 삼성과 KIA에서 기억에 남을 은퇴식 또는 은퇴경기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스타는 의외로 적다. 이만수(현 SK 수석코치)와 선동열(현 삼성 감독)이 대표적이다. 둘은 각각 삼성과 KIA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으나 공교롭게도 은퇴 세리머니의 기회는 갖지 못했다. 이만수는 1997년 시즌 후 은퇴 과정에서 구단과 등을 돌렸기 때문이고, 선동열은 1999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서 은퇴했기 때문이다. 특히 선동열의 경우 당시 해태가 국내 은퇴경기를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선동열을 임대로 보낸 해태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자 주니치에 거듭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부담감을 넘어 불쾌함까지 느끼던 선동열이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선수들에게 은퇴는 일생일대의 중대사다. 구단이 은퇴를 종용하면 생리적으로 반발심을 품고 이적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 또 선수생활 말년에 원치 않는 트레이드로 낯선 팀으로 옮겼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스타들도 부지기수다. 은퇴식을 못 치른 스타들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종두(삼성→쌍방울) 김재박(MBC·LG→태평양) 이순철(해태→삼성) 한대화(LG→쌍방울) 등은 은퇴를 압박하는 구단의 방침에 반기를 들고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한때 ‘천재 2루수’로 불렸던 강기웅은 1996년 11월 현대로의 트레이드 방침을 정한 삼성과 갈등을 빚다 이듬해 초 아예 은퇴해버렸다. SK에서 은퇴식을 한 김성래(삼성→쌍방울·SK)는 행복한 케이스다. 김시진 장효조(이상 삼성→롯데) 최동원(롯데→삼성) 이상훈(LG→SK) 등은 트레이드 부침 속에 소속감이 희미해진 비운의 스타들이다.

아울러 은퇴식과 은퇴경기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함에 따라 1980년대를 수놓은 프로야구 1세대 스타들에게는 은퇴식이 먼 나라 얘기나 다름없었다.


○은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구단과 원만하게 은퇴에 합의한 스타들은 대개 일단은 코치, 스카우트, 프런트 직원 등으로 변신해 현장을 지킨다. 성대한 은퇴식이나 은퇴경기는 없었더라도 능력을 인정 받으면 코치로 채용되고 감독으로까지 중용된다. 또 야구중계방송의 해설위원처럼 야구와 연관된 영역으로 행동반경을 넓히는 은퇴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은퇴 후 제2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새 출발에는 막연한 희망감과 더불어 원인 모를 불안감이 병존하는 법이다. 같은 이치로 야구 선수들에게도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다. 그나마 잘 풀린 경우인 코치도 선수시절과 비교하면 연봉에서부터 은퇴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코치 연봉은 대략 5000만∼6000만원이다. 게다가 코치는 1년 계약직이다. 일반인들의 노후설계, 은퇴설계처럼 선수들에게도 은퇴 후 삶을 위한 치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뚜벅뚜벅 ‘마이 웨이’를 걸어갈 내적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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