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가을이야기] 가을맨 임재철 “동기 홍성흔 보고 이 악물었죠”

입력 2010-10-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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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임재철. 스포츠동아DB

“생각보다 야구가 잘 됐네요.”

두산 임재철(34·사진)이 사람 좋게 웃습니다. 데뷔 후 가장 힘들었다는 한 해. 하지만 그는 요즘 ‘가을 사나이’로 이름을 날리는 중입니다.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거든요. 국내 외야수들 중 첫 손에 꼽히는 강한 어깨도 모처럼 물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잘 안 보이다 나타나니까 팬들이 더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저를 다시 각인시킬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감돕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준플레이오프를 며칠 앞두고 임재철을 따로 불렀습니다. “1차전에 선발 출장할 준비를 해라. 그동안 경기에 못 나가면서 마음 고생한 데 대한 보상이 됐으면 좋겠다.” 실은 그동안 벤치를 지키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임재철입니다. “군복무 2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보다 더 힘들었어요. 하지만 넋놓고 있으면 안 된다 싶어서 정신을 차렸죠. 이것저것 바꿔 보기도 하고…. 경기를 지켜보면서 많이 공부도 했어요.”

맞은편 롯데 덕아웃의 홍성흔과 조성환을 보면서 자극도 받았습니다. 임재철과 동기생인 둘은 팀의 주축이자 기둥으로 맹활약하고 있으니까요. “저도 예전에는 성환이보다 야구를 잘 했는데, 지금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어요. 지금 이 시기가 나중에 밑거름이 될 거라고 마음 먹었어요.”

그러다 결국 잡게 된, 예상 밖의 기회입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기본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안타 하나씩만 치고, 팀배팅 착실히 하고, 잡아야 할 공은 놓치지 말자.’ 이 정도가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자 일이 더 잘 풀렸습니다. 1·2차전에서는 9번타자였지만 3차전에서는 6번까지 격상됐습니다. 임재철이 타구를 잡으면 롯데 2루주자는 3루를 돌다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두산이 6-5로 승리한 3차전 9회말에는 선두 타자의 타구를 넘어지면서 잡아내 승리를 지켰습니다. 푸른 외야 잔디 위에서, 마운드에서 박수 치는 투수를 향해 검지를 들어보이는 기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벅찬 감정입니다.

물론 잠깐의 기쁨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시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내년은 올해보다 더 힘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늘 기도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이겨낼 겁니다.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이런 순간도 오잖아요.”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는, 참 흔한 말. 그러나 베테랑 임재철에게는 야구 인생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입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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