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가을이야기] 김창훈을 일으킨 ‘父情’…아들이 보은의 공을 뿌립니다

입력 2010-10-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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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투수 김창훈.

#툭. 어머니의 팔이 힘없이 떨어집니다. 아들의 심장도 철렁 내려앉습니다. 엄습해오는 불길한 느낌. 2년 째 암투병 중인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가 막 놓았던 참입니다. 가는 숨소리를 확인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돌립니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다시 방향을 바꿔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제법 쌀쌀한 밤바람 속으로 아들의 눈물이 흩어집니다.

어머니는 기다렸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마지막 숨을 참았습니다. 울고 있는 아들과 기어이 눈을 마주치고서야 영원한 잠에 들었습니다. 2007년 5월, 두산 김창훈(25)은 그렇게 어머니(故 이외복 씨)와 작별했습니다. “야구 잘하는 모습을 못 보시고 가신 게 가장 한이 돼요. 마지막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뚝.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팔꿈치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습니다. 대학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그토록 절박하게 던져야 했던 건, 어깨 인대 수술 후 1년 만에 나선 복귀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타자에게 공 네 개를 던지고 다시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세 달 전의 일입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야구는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 김기성(52) 씨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이대로 쓰러져선 안 돼.”

한 종합일간지의 대전 지국장이었던 아버지는 천안북일고에 입학해야 하는 외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몸을 직접 관리해주려고 퍼스널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습니다.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진 후에는, 매일 병실에서 간호하면서도 아들의 간식까지 살뜰하게 챙겼습니다. “부상에 어머니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아버지가 절 일으켜 세우셨어요. 제 고생은 부모님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죠.”


#128km.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던진 직구 구속입니다. 5년의 공백이 이렇게 만든 겁니다. 그 사이 한화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도 됐습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얼마나 막막했던지….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다, 두산이 나를 불렀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잡았어요.” 투구폼을 잡고 밸런스를 찾기 위해, 2군의 후배들을 상대로 배팅볼을 던졌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자존심을 다시 꿰매가며 버텼습니다. 그 사이 구속이 거짓말처럼 올라갔습니다. 128km에서 137km, 그리고 다시 143km. 그리고 이렇게, 가을 잔치 무대를 밟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뿌듯하게 웃습니다. “무뚝뚝하게 ‘수고했다’한 마디만 하셨지만, 기뻐하시는 아버지 마음을 알아요.” 그 위로, 흐뭇한 부모의 웃음소리가 겹쳐지는 듯 했습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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