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방콕 드림팀 “亞! 쉽네”…도하 대참사 “아쉽네∼”

입력 2010-10-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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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찬란 원조드림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야구드림팀의 원조격이다. 당시 대표팀은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앞세워 대만과 일본을 압도하고 전승 우승했다. 김병현과 서재응도 제몫을 다했다.

94년 정식종목 채택…역대 금2 은1 동1

방콕대회서 박찬호 등 원조드림팀 출격
결승전도 콜드게임승…사상 첫 금 선물

2006년 도하대회서 순수 국내파만 참가
대만 이어 日사회인팀에도 패해 동 눈물

한국야구는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세 번째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그동안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한국야구는 환희의 순간도 있었지만 좌절과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야구가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본다.


○1990년 베이징-첫 시범경기, 준우승


야구 종목이 시범경기로 아시안게임에 처음 등장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4개국만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은 당연히 우승을 노렸다. 그러나 당시 40세로 역대 최연소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강문길 감독이 투병 중인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결국 경성대 장순조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은 정민태의 완투로 숙적 일본을 6-1로 꺾었으나 대만에 3-6으로 패하고 말았다. 중국만 3전패였고, 나머지 3개국은 물고 물리며 2승1패. 결국 득실차를 따져 대만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은 2위에 그쳤다. 2루수 박정태(경성대)∼유격수 이종범(건국대)∼3루수 유지현(한양대)의 내야진은 최강이었으나 타선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던지고 싶었던 銀


야구가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8월 니카라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쿠바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 대표팀이기에 10월 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은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특히 문동환 임선동(이상 연세대) 조성민 손민한(이상 고려대) 등이 포진한 마운드는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6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B조에 속한 한국은 대만을 9-0, 몽골을 20-0으로 완파해 4강에 올랐고, 중국마저 14-0으로 대파하는 등 단 1점도 내주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어설픈 수비로 5-6으로 패하면서 은메달에 그쳤다. 한국은 0-2로 뒤진 5회 2사 1·2루서 안희봉의 3점홈런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7회에번트 처리 미숙과 2사 2·3루 위기에서 대타 다이세이의 타구를 2루수와 유격수가 미루다 놓치면서 재역전 당하고 말았다.


○1998년 방콕-원조 드림팀 출격, 사상 첫 금

최초로 프로선수가 참가하면서 한국의 ‘원조 드림팀’이 꾸려졌다. 미국 무대에서 뛰는 박찬호와 서재응이 참가했고, 프로와 아마추어 정예멤버가 출동했다. 프로 12명, 아마 10명으로 모두 병역미필자였다. 더블리그로 치러진 대회에서 한국은 대만과의 첫 경기에서 박찬호를 앞세워 16-5로 대승한 뒤 일본전에서도 7-7 동점인 8회초 김동주(3점)∼강혁(1점)∼백재호(1점)의 3연속타자 홈런에 힘입어 13-8로 승리했다. 대만과의 2차전에서 1점차로 쫓긴 8회말 박찬호를 투입해 5-4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고, 일본과의 2차전도 9-2로 크게 이겼다.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9-2로 승리한 한국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박찬호를 선발로 내세워 13-1, 7회 콜드게임승을 거두고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2년 부산-순수 국내파 출격 2연패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코치로 참가해 동메달을 이끌었던 두산 김인식 감독이 생애 첫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됐다. 방콕 대회와는 달리 해외파 없이 이승엽(삼성) 이종범(KIA) 송진우(한화) 이상훈(LG) 등 프로선수 위주로 대표팀이 꾸려졌다. 아마추어 선수는 정재복(인하대)이 유일했다. 중국을 8-0으로 꺾고 기분좋게 출발한 대표팀은 2차전 대만(7-0), 3차전 필리핀(15-0), 일본(9-0)까지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준결승에서 중국을 8-2로 누른 뒤 결승전에서 박명환 이승호(SK) 임창용 송진우가 이어던지며 궈홍즈가 중간에 등판한 대만을 4-3으로 꺾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고개숙인 도하 대참사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은 한국 야구대표팀에게 치욕이었다. 국내파 위주로만 멤버를 구성해 첫 경기 대만에 패배하더니 사회인 야구가 주축인 일본에마저 져 동메달에 머물렀다. 스포츠동아DB



○2006년 도하-WBC 4강 단꿈이 비극으로

3월에 열린 제1회 WBC에서 4강신화를 이루며 흥분했던 한국야구는 도하에서 참사를 당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해외파와 아마추어 선수를 배제한 채 순수 국내 프로야구 선수만 불러모았다. WBC에서 어깨부상을 당한 김동주를 비롯해 베테랑 선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 승선을 거부하는 등 출발부터 잡음을 냈다. 결국 첫판에서 해외파가 총출동한 대만에 2-4로 덜미를 잡혔다. 손민한이 4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고, 타선도 궈홍즈와 장젠밍이 이어던진 대만 마운드에 무릎을 꿇었다. 6개팀이 풀리그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어서 금메달 전선의 먹구름을 의미했다. 그리고 사회인야구 선수 중심의 일본과의 2차전에도 7-10으로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3회초 4점을 먼저 뽑고도 3회말 선발 류현진이 5점을 내주며 무너졌고, 7-7 동점인 9회말 오승환이 등판했지만 유격수 박기혁이 평범한 타구를 놓치고, 심판의 들쭉날쭉한 판정에 악전고투하다 쓰노 히사요시에게 끝내기 3점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나머지 3경기의 콜드게임승으로 동메달을 따냈지만 대표팀은 죄인처럼 귀국해야만 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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