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또 자진사퇴로 포장된 해고…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입력 2011-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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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가 18일 조범현 감독을 경질하고 선동열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KIA는 이날 보도자료에 ‘조범현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후 구단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었다’고 설명했다.

계약기간 3년 중 1년을 남겨두고 조 감독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진사퇴’ 형식을 빌렸다.

‘감독은 해고되기 위해 고용된다(Managers are hired to be fired)’라는 메이저리그 격언이 있듯, 갑과 을의 계약관계로 볼 때 구단의 입맛에 맞지 않은 감독을 구단이 해고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만의 불편한 진실은 구단 측에서 계약기간이 남은 감독을 교체할 때 대부분 ‘경질’ 혹은 ‘해임’이 아니라 ‘자진사퇴’ 형식을 빌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만 하더라도 LG는 페넌트레이스 종료일에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은 박종훈 감독을 해고하면서 ‘자진사퇴’로 포장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말 삼성 역시 계약기간 5년 중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선동열 감독을 자르면서 ‘자진사퇴’라고 표현했다.

주인공과 날짜만 다를 뿐 보도자료를 보면 ‘이하동문’이다. 지난해부터만 따져도 말 그대로 ‘자진사퇴’를 선택한 감독은 두산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밖에 없었다.

물론 구단에서는 물러나는 감독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합의 절차를 거쳐 ‘자진사퇴’라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구단의 면피용일 뿐이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일을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자진사퇴’라고 한들 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확하게 감독 해고 이유와 새 감독 선임 이유를 밝히고, 구단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팬들에 대한 양심이자 예의다. 나아가 프로야구 역사에 좀 더 솔직해지고 투명해지자. 프로야구의 나이는 서른 살인데 구단들이 너도나도 구태를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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