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단독 인터뷰] 궈홍치 “박찬호를 ‘형님’이라 부른다”

입력 2012-03-12 1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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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유니폼을 입고 스프링캠프에 참가중인 궈홍치. 애리조나 | 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동아닷컴]

대만투수 궈홍치(31)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줄곧 LA 다저스에서만 뛰었던 그에게 매리너스는 두 번째 팀이다.

지난해 12월 다저스에서 방출된 궈홍치는 올해 2월 매리너스와 연봉 5억6천만 원에 1년 단기계약을 맺었다. 2011시즌 다저스에서 받았던 연봉(약 30억 원)에 비하면 대폭 삭감된 액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25인 명단에 포함되면 12억 원을 받을 수 있고, 등판 경기 수에 따라 약 3억 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원래 선발투수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궈홍치는 팔꿈치 부상을 달고 살았다. 결국 그는 2008년 조 토레 감독의 권유로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했다. 그해 총 42경기에 등판한 궈홍치는 5승3패 평균자책점 2.14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보직변경을 이뤄냈다.

2010년은 궈홍치 야구인생의 봄날이었다. 중간계투로만 총 56차례 등판해 3승 2패 평균자책점 1.20을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도 맛봤다. 이때만 해도 궈홍치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1년 궈홍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시즌 내내 팔꿈치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27이닝을 투구하는데 그쳤고, 1승2패 평균자책점 9.00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 시즌 후에는 미국진출 후 다섯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결국 정들었던 다저스에서 쫓겨났다.

2005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통산 13승 17패 13세이브 자책점 3.73을 기록 중인 궈홍치를 미국 현지에서 만났다. 낯선 팀에서 절치부심 부활을 준비중인 궈홍치의 올 시즌 각오와 계획을 들어보자.

<다음은 궈홍치와의 일문일답>


-작년 겨울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지금 상태는 어떤가.

▲ 공 던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미 불펜피칭도 시작했고 구속도 서서히 끌어 올리는 중이다.


-팔꿈치 부상이 아쉽다. 지난해 부상 없이 지난 시즌을 보냈으면 장기계약 등 엄청난 연봉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 않나.

▲ 물론 아쉽다. 하지만 부상에서 벗어나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어 다행이고, 새로운 팀을 찾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이나 보냈다. 동양인 선수가 빅리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 특별한 비결은 없다. 어디에서 하든지 야구는 야구일 뿐이다. 어디서 왔느냐 하는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늘 야구를 사랑하고 팀원들과 함께 야구를 즐기려 한다. 성적이나 결과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야구를 즐기려고 했던 게 비결이라고 본다.

시애틀의 유니폼을 입고 스프링캠프에 참가중인 궈홍치. 애리조나 | 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다저스 시절 박찬호와 함께 뛰었다. 가까운 사이인가.

▲ 그렇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전화해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지난 달에도 전화통화했다.


- 박찬호의 별명은 없었나.

▲특별한 별명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를 늘 ‘형님’이라고 불렀다.


- 한글로 정확하게 ‘형님’이라고 부르다니 놀랍다. ‘형님’이 무슨 뜻인지 알고 그렇게 부른건가.

▲ 물론이다. 나이가 많은 남자형제를 가리키는 말로, ‘형님’이라는 호칭에는 그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찬호가 미국과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올 시즌 한국무대에 데뷔한다.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형님’이 한국에서 뛴다는 이야기를 지난 달에 통화할 때 들었다. 잘된 일이다. 부상 없이 한국무대에서 건강하게 던졌으면 한다. ‘형님’은 자기관리를 잘하고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하리라 믿는다. 행운을 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셋업맨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로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은 없나?

▲ 전혀 없다. 어떤 보직에서 던지던지 우선은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건강하게 야구를 즐기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보직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보직에 상관없이 건강하게 던지고 싶다.


-대만에서 당신의 인기가 대단할 것 같다. 그렇지 않나.

▲ (두 손을 가로저으며) 아니다. 나보다 더 유명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내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요즘 제레미 린이 대만의 유명인사라고 하더라. 혹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 나도 그의 폭발적인 인기를 TV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미국 내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인기가 매우 높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정든 LA를 떠나 새로운 팀 시애틀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됐다. 이곳 분위기는 어떤가.

▲ 좋다. 선수들도 잘해주고 시설이나 기타 다른 환경도 마음에 든다.


-슈퍼스타 이치로와는 어떻게 지내나.

▲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대화를 나눈다. 좋은 선수다.


-올해 31살이다. 언제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뛸 계획이며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 언제까지라고 시기를 정해놓진 않았다. 매 시즌 부상 없이 건강하게 던지는 게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은퇴 후에 무엇을 하겠다는 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부상당하기 전에는 매년 몇 승을 하겠다는 수치상의 목표도 세웠는데 이젠 건강하게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시애틀의 유니폼을 입고 스프링캠프에 참가중인 궈홍치. 애리조나 | 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도하 아시안 게임과 2006년 WBC때 한국 대표팀을 상대했다. 한국 타자 중 인상 깊었던 선수가 있다면?

▲ 내 기억에는 쉬운 선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한국타자는 다 상대하기 까다롭다. 미안하지만 선수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박찬호는 미국진출 초창기에 몸에서 마늘냄새가 난다며 동료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신도 같은 동양인 투수로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 다행히 나에겐 그런 일은 없었다.


-일부 한국야구선수는 인삼이나 뱀 등의 보양식을 먹는다. 당신도 체력보강을 위해 특별히 섭취하는 음식이 있나?

▲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뱀을 먹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전혀 먹지 않는다. 특별히 체력보강을 위해 먹는 음식은 없다. 좋아하는 일반음식을 맛있게 먹을 뿐이다.


-올 시즌 부활을 자신하는가.

▲ 부활하기 위해 새로운 팀을 찾았고 그러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반드시 일어설 테니 지켜봐 달라.


-궈홍치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 간단하게 말해 내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야구를 빼면 아무 것도 없다. 나를 지탱해주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끝으로 궈홍치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 (깜짝 놀라며) 정말인가? 한국에도 나를 응원하는 팬이 있다니 놀랍고 고맙다. 올 시즌 부활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 계속 응원해 달라. 그리고 그들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

애리조나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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