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2관왕’ 김청용 “금메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입력 2014-09-22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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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유망주’ 김청용(가운데)이 21일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올랐다. “금메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라고 소감을 밝힌 그는 시상식 후 어머니(오른쪽), 누나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인천|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男 사격 고교생 스타 김청용의 ‘사부곡’

17세…한국사격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등극
“돌아가신 아버지, 시합 때마다 내 곁 지켜줘
날 위해 희생한 어머니·누나 호강 시켜줄 것”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고교생 샛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처럼 맑은 얼굴(淸容)로 미소를 보냈다. 김청용(17·흥덕고)은 21일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본선에서 585점을 명중하며 진종오(35·kt·581점)∼이대명(26·KB국민은행·578점)과 함께 합계 1744점으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결선에서도 201.2점을 기록하며 개인전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한국의 이번 대회 첫 2관왕이다.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을 통틀어 한국사격의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라고 설명했다. 관중석에서 아들을 응원하던 김청용의 어머니 오세명 씨와 누나 김다정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가족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있다. 시상식을 마친 김청용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니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 어머니의 노점 설거지 거리를 옮기던 효자

김청용이 어릴 때부터 가정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노점에서 떡볶이를 팔았다.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하다보니, 하교시간이면 아들도 마주치는 위치였다. 어머니는 혹시나 어린 아들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늘 걱정했다. “아들, 엄마가 창피하지 않아?” 그러나 애어른 같은 아들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괜찮아요. 뭐가 어때요.” 김청용은 오히려 설거지 거리를 옮기는 일을 항상 도왔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심성이 참 착한 아이였다. 어린 아들에게 무척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아버지와의 다짐

아버지 고(故) 김주훈 씨는 태권도선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고교 시절 불의의 부상을 당해 운동을 접었다. 이후 택시운전을 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김청용이 중1 때 사격을 시작하려 하자 극렬히 반대했다. 중도에 그만뒀을 경우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꼭 1등을 하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고서야 사격 입문을 허락했다.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청주 서현중에서 사격부가 있는 복대중으로 전학시킨 것이 2010년 12월 23일, 바로 중1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 가족의 희망이 된 김청용의 총구

전학을 한 바로 다음 날 크리스마스이브. 단란했던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는 삭발투쟁까지 해가며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병원과 싸웠다. 이 사연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축 처진 어머니의 어깨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아들이었다. “하루는 제가 우는데 청용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머리는 또 기르면 되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빠의 억울한 일은 꼭 엄마가 풀어주세요.” 여섯 살 많은 누나는 부모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사격에서 재능을 보이며 승승장구한 김청용만이 가족의 희망이었다. 한해 한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 산소 앞에 바치는 메달 수도 많아졌다.


● 실수하고도 10점 맞을 때? “아버지의 도움인 듯”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갖게 된 개인택시는 지금도 번호판이 바뀌지 않은 상태로 청주시내를 돌아다닌다. 최근 고향 청주에 내려간 김청용은 택시를 잡자마자 깜짝 놀랐다. ‘8###’ 바로 아버지가 몰던 택시였다. 김청용은 아버지가 항상 자신을 곁에서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큰 대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꼭 영정 사진 앞에서 “아빠, 저 메달 따왔어요”라며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사대에서 아버지께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말하곤 해요. 가끔씩 실수를 한 것 같은데 10점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참 신기해요. 그럴 땐 진짜 아버지께서 도와주시나 싶어요.”


● ‘날 위해 희생한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김청용의 목표의식은 분명하다. 사격으로 성공해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와 누나를 호강시키는 것이다. 현재 고교 2학년인 김청용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 2월 졸업 예정이다. 실업·대학팀의 스카우트 표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실 저는 빨리 실업팀에 가서 돈을 벌고 싶어요. 어머니, 누나 모두 고생하시니까…. 하지만 집에선 대학 가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일단은 매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기를 마친 김청용은 활짝 웃는 얼굴로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의 총구는 결국 가족의 희망을 쏜 것이었다.

인천|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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