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 Clean] 학교까지 파고 든 검은 손…솜방망이 처벌로는 안된다

입력 2016-09-2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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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갈수록 지능화 되어가는 불법스포츠도박

일가친척까지 동원 76억 가로챈 일당 적발
“돈만 벌수 있다면…” 청소년들도 한탕주의
심각한 사회문제 불구 대부분 벌금형 문제


세계가 인정하는 인터넷 강국 한국. 통신 인프라는 물론이고 활용빈도나 이용 마인드에서도 세계 정상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우월한 인터넷 환경과 마인드가 때로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범죄에 악용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한 불법스포츠도박이 대표적이다.

불법스포츠도박의 폐해와 피해실태는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극히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다. 평범하고 성실하던 사람들이 그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는 미성년이 청소년들까지 그 늪에 잘못 발을 들여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불법스포츠도박의 검은 손길이 사회 구석구석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범죄규모도 이제는 몇 십억을 넘어가고, 조직운영이나 자금은닉 등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 첨단화되는 불법스포츠도박. 그 실태를 짚어봤다.


● 피해자 1만3000여명, 범죄규모 76억…범행에 일가친척까지 동원

‘작은아버지는 현금 인출책, 사촌동생은 중국 업소 관리실장.’

불법스포츠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최근 경찰에 붙잡힌 이모씨 일당 11명은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일가친척을 동원한‘패밀리 비지니스’의 전형이다. 운영 총책 이씨(35)는 2014년 4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에 서버를 둔 불법스포츠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작은아버지 이모(55)씨를 국내에서 피해자들이 입금한 게임머니를 인출하는 현금 인출팀장으로 활용했다. 사촌동생(23) 역시 중국에 만든 사무실 6곳을 관리하는 실장으로 두고 수익금을 관리해왔다. 이렇게 불법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들로부터 게임머니 명목으로 가로챈 금액만 무려 76억원.

이씨 일당의 범죄과정을 보면 불법스포츠도박이 얼마나 진화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자신들을 스포츠경기 예상 전문가로 위장해 각종 인터넷 카페 게시판이나 블로그 SNS에 글을 올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하면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한 달에 500만원 이상 수입이 가능하다”고 피해자들을 유혹했다. 이들의 호언장담을 믿은 피해자들이 게임머니를 입금시키고, 경기에 배팅하면 곧바로 해당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아이디 삭제, 결과 조작 등의 방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이씨 일당은 이렇게 게임머니를 챙기기 위해 100여개가 넘는 대포통장을 이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대포통장을 통해 확인한 피해자만 1만3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충북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혐의로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은 이씨 일당 11명 외에 공범 김모(23)씨 등 3명과 이씨의 도피를 도와준 여성 2명 등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검거과정에서 현금 12억원도 압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 이외에 6000만원 상당의 고급시계 2개와 타인 명의 통장 70여개, 대포폰 18개, 현금인출카드 41개를 압수했다. 중국에 있는 피의자들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 ‘토사장’의 비극…청소년들도 범죄자로 만드는 불법스포츠도박

불법스포츠도박의 마수는 이미 청소년들에게도 뻗쳐 있다.

호기심이나 장난기로 불법스포츠도박에 접근한 청소년들이 한탕주의의 수렁에 빠지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된다. 이런 실태를 반영한 것이 청소년 사이에 최근 등장한‘토짱’과 ‘토사장’이란 은어다.

‘토짱’은 불법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승률이 높은 친구를 가리키고 ‘토사장’은 불법스포츠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수익을 올리는 친구를 말한다.

대부분 중학교 때 친구나 우연한 기회에 접한 불법스포츠도박을 통해 용돈벌이를 위해 소액으로 시작해, 고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를 통한 대리배팅 사례도 빈번하다. 2012년 대전에서 적발된 불법스포츠 도박에서 검거된 400여 명 중 청소년 이용자가 150여 명이었다.

중3때부터 불법스포츠도박에 빠졌던 고교생 A군은 최근 회원들을 모으는 공급책으로 아예 나서 돈벌이에 빠졌다. 그는 불법 온라인 도박업체로부터 현장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고3생 B군은 불법스포츠도박 사이트에 빠져 현재 300만원의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친구의 소개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설 스포츠토토를 경험하면서 도박에 빠져 어린 나이에 채무자로 전락했다. B군에 따르면 자신의 학교 전교생 중 절반가량인 150여명이 온라인 불법도박을 하고 있거나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고교생 C군은 단순히 유흥비를 벌고 싶어 불법스포츠도박을 시작했다가 차츰 판돈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한번에 500만원까지 베팅 했다. 이렇게 번 돈을 쇼핑이나 유흥비로 쓰다가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인터넷 중고거래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것처럼 사기를 벌였다가 적발돼 보호감찰 처분을 받았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청소년의 경우, 불법스포츠도박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에 빠져들어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도박으로 몇십억원씩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큰 돈만 만질 수 있다면 1∼2년 감옥에 있다가 나와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며 황금제일주의 세태가 낳은 도덕적 해이를 보여 충격을 주고 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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