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이스라엘에는 기적 아닌 절실·열정 있었다

입력 2017-03-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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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표팀. 스포츠동아DB

이스라엘이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첫 경기에서 한국에 2-1로 승리하자 미국 뉴욕 타임즈는 ‘기적 중의 기적(miracle of miracles)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를 설명할 때 기적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열정과 절실함 그리고 치밀한 전략이 더 크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6일 경기가 오후 10시 51분에 끝나 짧은 휴식만 취한 후 7일 낮 12시 대만과 2차전을 치렀다. 주축 투수들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15-7 대승을 거뒀다. 스카이돔을 찾은 외신 기자들은 “마이너리그 선수 위주로 구성된 12개 참가 팀 중 12위 후보였던 이스라엘이 24시간도 안 돼 2경기에 승리하며 조1위가 됐다”며 놀라워했다.

이스라엘 제이슨 마르키. 스포츠동아DB



● 은퇴와 재기무대에 선 절박함

빅 리그 124승 투수 제이슨 마르키(38)는 한국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동료들에게 “야구인생의 마지막 경기일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마르키지만 2016년 소속팀 없이 한 해를 보냈다. 올해 역시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마르키에게 WBC는 자신이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서는 마지막 무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간절한 무대다.

한국전에서 150km 이상의 빠른 공으로 3이닝 무실점 승리 투수가 된 조시 자이드(29)는 20대 젊은 투수지만 아직 소속 팀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트리플A에서 던졌던 자이드에게 WBC는 절박한 곳이다.

스카이돔에는 빅 리그 스카우트가 즐비하다. 친분이 있는 국내 에이전트들에게 한국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지만 이제 이스라엘 선수들에게 눈길이 쏠려있다.

이스라엘 선수 상당수는 소속 팀이 없다. 대부분은 싱글A와 트리플A에서 불안한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절박한 열정은 한국이 갖지 못한 무기다. WBC를 발판삼아 슈퍼스타가 된 네덜란드 잰더 보가츠(보스턴)는 이들에게는 롤 모델이다.

한국 WBC대표팀이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1라운드 1차전 이스라엘과 경기를 가졌다. 8회초 1사 1루 이스라엘 대타 데이비스가 우전 2루타를 치고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고척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 치밀한 전략과 탄탄한 팀워크

이스라엘은 한국과 대만전에서 과감한 수비 시프트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과감한 작전이었다. 제리 웨인스타인 감독에게 시프트 작전에 대해 직접 물었다. 답에는 강한 자신감이 담겨져 있었다. 웨인스타인 감독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위험한 작전이었다. 아주 작은 샘플로 시프트를 구성해야 했다. 비디오를 열심히 봤다. 스카우트들의 도움도 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열심히 했다”고 답했다. 불과 하루 전 웨인스타인 감독이 “잘 준비했다. 기대가 된다”고 했을 때 귀 기울여 듣는 이는 많지 않았었다.

탄탄한 팀워크와 환상적인 수비 조합은 아주 짧은 기간 함께 훈련한 팀이라고 믿겨지지 않는다. 특히 이스라엘 선수 28명 중 27명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그러나 이들은 특별한 유대감을 통해 하나로 뭉쳐 있었다. 본선진출이 확정된 후 몇몇 선수들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함께 방문했다. 아이크 데이비스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생각했다. 아직 예루살렘을 방문해 보지 못한 이스라엘 선수도 있다. 모든 것을 종교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들어온 이야기의 배경을 실제로 봤다.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 이번 WBC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야구가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 선수단의 소망이다”고 말했다. 야구가 그라운드에서 그릴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다.

고척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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